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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못 보곤 한다"

헬렌켈러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 말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내가 교육행정직으로 근무하면서,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가까운 지인이 한 말에서 가장 감명깊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게 이렇게 답답한데, 알지 못하면 얼마나 답답하겠노" 이 말은 우리 학교에 급여컨설팅을 하러 온 K주무관이 나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 한켠이 쿵 하고 내려앉고 감격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벽을 뛰어넘고 주변을 돌아보는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내가 중학교 행정실장으로 있었을 때 행정실 직원이 발령을 받고 급여업무를 분장받았으나 한번도 급여를 한 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급여컨설팅단에 있었던 K주무관은 나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본인은 본인 학교에 연가를 내고 우리 학교에 와 주었다.

그날 오전에 와서 오후 늦게까지 하루종일 우리 직원과 급여순서와 급여시 주의사항, 보험관련 등의 일을 알차게 알려주었다. 그녀가 우리 학교에 온 것은 이때뿐만이 아니었다.

그 전 해에 신규공무원으로 임용받아 발령받은 직원에게도 동일하게 급여컨설팅을 하러 와줬다.
내가 K 주무관을 처음 만난 때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고등학교에 복직하던 지금으로부터 9년전이었는데 근무첫날, 당시 실장님이 K주무관은 앞을 잘 보지 못하지만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고 알려주었다.

그날, K주무관은 분무기로 행정실을 돌아다니며 화초에 물을 뿌리고 있었고 행동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어 보여서 눈이 조금 안 보이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녀는 행정실 안 분위기 메이커였고 화통했으며 직원들과 소통을 잘 하여 문제해결을 빨리 했다. 업무외적인 일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라 어려움이 있는 직원들의 형편을 헤아리며 상담도 잘해 주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장기미납자와의 길고 긴 전화통화였다.

보통 전화통화가 길어지면 일이 바쁜 상황에서는 간단하게 전달하고 통화를 마무리하기 마련인데 K주무관은 1시간이상 길고 긴 하소연을 들어가며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일일이 반응해 주었다.대개 장기미납 독촉을 하다가 민원이 발생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K주무관이 통화를 하고 나면 상대방이 “이렇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전화를 끊고 얼마되지 않아 미납금을 납부하였다. 그래서 그해  K주무관은 '5년간 불납결손 제로' 감사 우수사례로 당당하게 상을 받았다.

그녀는 시각장애 1급이다. 교육행정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다음해, 시력이 조금 나빠져 안과에 갔다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다른 병원도 방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때는 당장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서 몇 년간은 평소와 다름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시력은 점점 나빠졌고 2011년이 되었을때는 동료의 도움이 있어야 업무 진행이 될 만큼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력이 약해진 상태에서도 업무를 충실히 하여 각종 표창도 받았고, 지금은 근로지원인서비스를 제공받아 업무를 원활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급여컨설팅업무를 하면서도 신규공무원들이 알고자 하면 주말이고 공휴일없이 학교에서 급여업무컨설팅을 해주고 각종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는 K주무관에게 '주말도 없이 그렇게 하면 너무 힘들지 않냐? 좀 쉬면서 했으면 좋겠다'고 전하면 그때도 동일하게 '내가 이렇게 보이지 않아서 답답한데, 오죽 답답하면 주말에도 연락하겠나. 자기들이 알려고 찾아오겠다는데 알려줘야지!'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후배 공무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가치롭게 삶을 살아갔다. 그런 그녀가 옆에 있어 참 자랑스럽고 든든하고 감사하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혔을 때 그 닫힌 문만 바라보고 후회하고 애통해하지 않기를….

우리에게는 또 다른 문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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