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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가에서 인문학 강의는 폐강되기 일쑤고,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문학과는 통폐합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캠퍼스 밖에선 수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위태로움을 느끼는 동안 대중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본보는 박삼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와 대담으로 진행하는 '생활 속에서 만나는 동양철학'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인문학과 고전 열풍에 대한 이해'와 '직장인에게 들려주는 논어이야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 인문학과 고전의 이해

- 인문학 열풍 과연 어디서 시작된 걸까
△ 몇 년 전부터 불어온 '인문학 열풍'은 기이한 현상이다. 누가 일으킨 것인지 주체가 없어 더욱 특이하다. 이 현상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면 과거 우리나라에 불어온 다른 열풍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1960~70년대 헐벗고 굶주린 시대를 지나 경제가 차츰 발전하고 먹고 살만 해진 때가 1980~90년대다. 이때 사람답게 살아보자 하며 어느 날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었다.
'웰빙' 또한 정확한 주체를 찾기 어려웠다. 사람답게 살기위한 '웰빙'을 이루고자 했으나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일단은 배가 부르니까 '잘살아보자' 외쳤지만 배만 부른 상태론 '웰빙'을 실천하기 어려웠다. 몸은 편할지언정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웰빙'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병든 몸과 마음을 먼저 치유하자는 바람이 불었고 뒤이어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웰빙'보다 '힐링'을 먼저 하자는 움직임은 '마음의 치유'가 선행돼야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힐링'을 위해 술을 마셔보고, 여행도 가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봤지만 완전한 '힐링'에는 이르지 못했다. 마음의 병과 스트레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자 이와 중에 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이 '인문학'인 셈이다.

- '인문학'과 '고전'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에 집중해야 하는가
△ '천문(天文)'과 '인문(人文)'이라는 단어는 주역에 나온다. 여기서 '문'자는 아름답게 꾸민다는 문양(文樣)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천문이란 '하늘의 무늬', 인문이란 '사람의 무늬'를 뜻한다. '무늬'는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지 흉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즉 '사람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인문'이라 일컫는다. 그 이론을 탐구하는 것이 '인문학'이고 사람다움에 대한 이론, 가르침, 주장이 집약된 것이 '고전'이다. 인문학의 정점에는 성현의 고전이 있다.
인문학은 다시 문학·사학·철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철학과정이 좀 더 원론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에 철학 고전의 의미가 깊다. 철학 고전의 저자들을 성현(성인·현인)이라 부르는데, 성현이란 존재는 상상 이상의 지적 소유자, 선각자다.
하지만 오늘날은 사람들이 성현처럼 그렇게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물질에 정신이 흐려져 있어 순수 상태 인간의 극점에 도달하는 사고를 현 시대엔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 때문에 과연 앞으로도 이 같은 성현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한다.
다만 지금 이 시대에도 위대한 성현들을 책 한권으로 내 앞에 모실 수 있고, 강의 한번으로 눈앞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낀다. 이러한 이유로 더 많은 이들이 강의를 듣고 인문학과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되면 좋고, 관심에서 나아가 심층적인 공부를 시작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전'이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내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접근조차 꺼리는 이가 많다. 고전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 '고전은 어렵다는 것'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쉬운 것만 찾아다녀선 안 된다.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이 쉬울 수가 없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 성현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듯 아무리 어려운 일도 결국은 넘어설 수 있다.
고전을 읽다보면 한마디 한마디가 서서히 가슴을 치게 한다. 고전은 그렇게 읽어야한다. 글자만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다르다. 고전 어려움의 고비를 넘기고 진가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가치관과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여력이 생긴다.
'고전'은 원래 어려운 것인데 번역자들이 더 어렵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쉽게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붕어빵'에 정작 '붕어'는 없고 맛만 있는 현란한 글들이 나오는 것 같다. 한 문장을 어떻게 번역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한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끼는지도 중요하다. 창의적인 풀이가 많거나 너무 쉽게 쓴 책들은 씁쓸함을 더한다. 쉽게 가려다보면 원문에 충실할 수 없다. 명품을 사려면 돈을 들이듯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고전에 달려들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한 치를 양보하지 못하고 각박하다. 인류가 물질적으로 발달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더 타락하고 있다. 국가 사회적으로 인문학과 고전 인성교육을 강화하자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2,500여 년 전에 이미 인생을 꿰뚫어본 성현의 가르침은 알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 직장인들이 알면 좋은 논어 가르침

짜증내면서 하나, 웃으면서 하나 어차피 해야 할 일, 즐기면서 하라

직장인으로서의 삶 알아가려 노력
의미 찾을수록 한 단계씩 성장 발전
결국 스스로 즐기는 단계까지 도달


-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공자'의 '논어'에는 현실에서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많은 교훈이 담겨있다. 오늘날 자신이 세웠던 목표와 방식대로 잘 살고 있는지 해답을 찾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논어'의 가르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공자의 말씀이다.  
가장 높은 경지는 즐기는 것이다. 모든 분야의 사람이 즐김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면 그 세상은 정말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다만 즐기기 위해서는 앎이 선행돼야 한다. 알지 못하면 그 벽을 넘기가 힘들다. 직장인들은 업무적인 부분을 비롯해 직장인으로서 삶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모른 채 그냥 월급만 받고 다니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삶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논할 수 없다. 이해가 선행돼야 '자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회사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떤 작용을 하고 업무 개선을 할 수 있을까' 등의 창의적인 생각들을 할 수 있다.
알려고 할수록 직장생활에서 더 나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등 앎의 단계에 이르면 다음 단계는 자연스레 나아가게 돼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를 찾고, 회사가 발전하면서 함께 보람을 느끼면 또 더욱 나은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즐김의 단계는 굉장히 높은 단계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즐기는 단계라고 느끼면 된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사표를 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한다. 짜증내면서 하나, 웃으면서 하나 결국 해야 될 일 인거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을 선각자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같은 인생의 이치를 고전을 보고 알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에 길이 있는 것이다.       강현주기자 uskhj@ulsanpress.net

●박삼수 교수
경북대학교, 타이완(臺灣)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각각 중문학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출판부장,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학과 방문교수를 거쳤다.
현재 울산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중국 산동사범대학교 대학원 교외논문지도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는 '쉽고 바르게 읽는 논어''쉽고 바르게 읽는 노자''공자와 논어, 얼마나 바르게 알고 있는가?'' 장자'' 손자병법''왕유 시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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