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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국가정원 전경. 뉴비전아트포럼 제공
태화강 국가정원 전경. 뉴비전아트포럼 제공

울산은 한반도 인류의 시원이 깃든 땅이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육로나 해로를 따라 인류의 한 뿌리가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이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이미 정설로 굳어진 이야기다. 서생면 신암리 유적이나, 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이 있고 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한반도 선사문화 일번지인 대곡천 일대의 암각화는 울산이 고대 한반도 정착민의 영험한 영역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울산은 천혜의 땅이다. 그 천혜의 땅에서 일궈낸 문화의 힘이 고대국가와 신라, 고려와 조선을 지나 오늘에 연결돼 있다. 그 오랜 역사의 끝자락이 산업수도 울산이지만 오래된 과거는 울산의 뿌리를 엄청난 역사성으로 웅변하고 있다.
바로 그 울산의 산과 들, 강과 바다에 깃든 자연과 역사 문화의 흔적들을 지면으로 입체화 시켜본다. 그 찬란한 시각적 유물과 숨은 이야기들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떠나보자. 이 코너의 사진은 뉴비전아트포럼의 도움을 받았다. 편집자

 

태화는 불교와 연관이 깊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나와 있다. 신라 승려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중국 산동성에서 만나 신인과의 대화에 태화가 등장한다. 자장은 신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사를 일으키라는 신인의 고명을 듣고 경주 남쪽 울산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태화사라 정했다.

# 태화라는 이름을 갖기전부터 인류사의 노정이 시작된 곳
태화사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태화루 위치에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태화루 부근이나 좀 더 서쪽인 태화동 옛 신기마을 위치로 짐작된다. 이 일대는 태화강에 면해서 남향한 높은 대지로, 사찰같은 규모가 큰 건물의 입지 조건으로 최적이다.
지금은 태화사의 흔적은 사라지고 언제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태화루로 강의 이름을 유추하고 있지만 강의 역사가 신라 1,000년의 영욕을 같이 할 정도로 위용과 품격을 지닌 강이었다.

태화사가 위치한 강이라는 뿌리로 태화강이 된 이 강에 임금의 행차가 처음 이뤄진 것은 고려 성종 때다. 경주를 시찰하고 울산으로 내려온 왕이 울산 태화루에 올라 잔치를 베풀었다는 고려사(高麗史)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에는 당시 태화강에 큰 물고기가 뛰어올라 모두가 놀랐다는 증언이 있는데 아마도 이 물고기는 돌고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신라1000년의 영광과 대한민국 산업수도 반세기 영욕 고스란히
자장이 불사를 일으켜 태화사를 짓고 태화루가 고려와 조선의 시인묵객들의 경연장이 된지 오랜 뒤, 태화강은 대한민국 산업수도의 젓줄로 모든 희생을 감내한다.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는 가난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절체절명의 아젠더로 울산을 굴뚝수도로 찍었다. 그로부터 30년, 울산의 산하는 할퀴고 뒤집어지고 뭉개졌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야 조국이 살아난다는 군사정부의 슬로건처럼 울산의 하늘은 매캐했고 태화강은 오염이 무르익어 죽음의 강이 됐다. 그 몹쓸 세월을 딛고 다시 일어선 세월, 태화강은 생태복원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 대곡천부터 울산항까지 되살린 울산의 저력
바로 태화강국가정원 지정이다. 태화강의 국가정원 지정은 죽음의 강을 생태의 강으로 바꾸고 공해도시의 이미지를 역사문화가 공존하는 첨단 생태환경도시로 변화시킨 저력을 국내외에 과시한 쾌거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관광이 울산의 새로운 미래 산업이 됐다.

태화강은 이름을 갖기 이전부터 인류사의 위대한 노정이 시작된 곳이다. 그 질곡의 시간을 굽이쳐 흐른 강이 이제 새로운 명패를 얻은 셈이다. 굳이 이름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름표 자체가 대전환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선사문화의 첫발을 디딘 이 땅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역사시대의 혈맥이 됐고 그 동맥이 삼한통일의 심장소리로 쿵쾅거렸다. 그 후로 1,000년, 유배의 땅이 되고 침략의 폐허로 버려졌던 땅이 부활했다. 조국근대화의 새 이름표를 단 이 땅에서 산업의 불기둥이 올랐고 강은 더럽혀지고 물길은 사나와졌다. 질곡의 그 강이 이제 영욕을 딛고 국가정원이라는 표창의 이름표를 달았으니 분명히 별것이라는 이야기다.

울산의 오래된 시간을 더듬다보면 결국 역사시대 이전의 울산이 가진 경이로움과 만나게 된다. 자료가 없으니 증명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아직도 울산의 곳곳에는 인류문화의 원형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태화강의 원류, 대곡천 자락에 남겨진 반구대암각화이고 선사문화 1번지인 구곡계곡과 천전리각석이다. 강을 젖줄로 문화를 일군 이들이 왜 하필 울산에서 고래문화를 일구었을까. 의문도 잠시, 바위그림 들여다보면 수렵과 사냥으로 웅비하던 북방문화가 거의 절반이다. 고래를 잡던 해양문화와 호랑이를 때려잡던 북방의 기개가 왜 하필 구곡계곡에서 절묘한 만남을 했을까. 의문은 의문을 낳아 오래된 미래와 만난다.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거듭난 것은 울산의 역사에서 다시 없는 기회다. 울산은 7,000년전 북방계 스키타이와 남방계 폴로네시안이 만난 자리다. 그 자리 위에서 신라 1,000년의 영광을 함께했고 대한민국 산업화 반세기를 주도했다.

이제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열 차례다. 바로 그 중심이 태화강이다. 사무치는 이 강에는 놀랍게도 선사시대부터 오늘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흐르고 있다. 산업수도와 공업도시라는 틀에 갇힌 울산은 고착화된 탈바가지를 벗고 태화강국가정원의 이름으로 새로운 옷을 입을 때가 왔다. 죽음의 강이라던 태화강을 구석구석 씻어내고 대곡천부터 울산항까지 100리길을 가꾼 자신감이 오늘을 있게 했다. 강이 정화되고 생태환경이 살아나자 그 길 위에 역사와 문화가 찾아들었다.


# 울산 미래 100년 도약 밑거름
전국의 지자체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울산처럼 풍부하고 특별한 문화적 자산을 가진 도시는 드물다. 바로 그 중심에 태화강이 흐르고 그 강심으로 고래가 면면히 자리하고 있다. 고래는 원시의 울산 땅에 사람이 산 증좌이자 이곳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다. 고래로 시작된 울산의 역사와 문화는 무수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그 출발은 바로 반구대암각화다. 반구대 바위에서 7,000년 단잠에 빠진 고래떼를 불러내 강물에 띄워 국가정원을 한바퀴 돌아 동해로 달려가게 하는 시간이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바로 그 출발 지점이 태화강국가정원이다. 울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김진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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