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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右) 속 저 훤한 신사가 '테드 휴즈TED HUGHES(1930-1988)'다. 마주한 사랑스런 여인은 그의 부인 실비아 플러스다. 영국 요크셔 출신의 테드 휴즈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 및 고고인류학을 전공한 작가다. 동화와 시를 넘나들며 '철가면' '고양이와 뻐꾸기' '북극성 아래에서' '세상이 열리던 날에'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명작들을 남긴다.
개, 소, 당나귀, 돼지, 염소, 고양이, 암탉을 비롯한 가축들과 숫양, 공작, 수달, 까마귀, 두더지, 다람쥐, 두꺼비, 지렁이, 달팽이 같은 친근한 친구들이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평범한 주인공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시로 빚어져 있다. 테드 휴즈의 개성적 문체로 그려낸 시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같지만 쓸 수 없는 철학적 깊이로 유혹한다.

두꺼비가 운다: "난 처음에 생각이었단다.
다음엔 그 생각이 자라 사마귀가 되었지.
사마귀는 생각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다시 사마귀들로 변했어.

난 이 사마귀 투성이로부터
달아나려고 해보았어
개구리처럼 팔짝팔짝 뛰어서 말이야
그랬더니 사마귀가 토라졌어.
그래서 이런 꼴이 된 거야.
그래서 이렇게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10촉광짜리 눈이야.
그런데 파리놈들은 모두 어디 간 거지?
저 못된 박쥐놈들이 다 먹어치웠군!"       

두꺼비는 모자처럼 눈꺼풀로 눈을 덮는다.  

-'두꺼비' 전문

눈꺼풀을 모자로 쓴 두꺼비라니! 그 두꺼비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단다. 험상궂은 사마귀로 자라난 생각은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되어 턱 버티고 선다. 10촉의 번쩍이는 눈알은 먹이를 찾지만 다른 나는 놈이 먹어치워 버려 모자를 눌러 쓸 수밖에 없단다. 가련한 두꺼비, 울퉁불퉁 커져만 가는 배고픔을 어찌 참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개똥지빠귀'가 그 걱정을 싹 걷어간다.

목청 좋은
점박이 개똥지빠귀는
어둠 속에 부리를 담그고
해를 끄집어내지.

그리곤 달팽이들에게 말하네.
"하느님이 다시 오셨다!
눈감고 기도하렴.
내가 아멘을 불러줄 테니.

아멘이 끝나면
기뻐하렴! 기뻐하렴!"

그리곤 이슬 몇 방울 떠서
목청을 가다듬는다.   

-'개똥지빠귀' 전문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테드 휴즈는 이제 '어둠 속에 부리를 담그고 해를 끄집어 낸 개똥지빠귀'로 각인된다. 아내 실비아 플러스에게 첫눈에 반한 눈빛으로 인화해낸 그의 시들은 활기차다. 두꺼운 동물사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듯 유쾌한 이 기분은 뭘까? "혼자서 밥먹지는 않아./옛날옛적 사람들이/나와 함께/밥을 먹어 주거든." 혼자 컴컴한 땅 속을 뒤지며 살지만 결코 기죽지 않는 '두더지'에게 한 수 배운다.
달에서 번쩍이는 해로 전등을 갈아 끼운 절대자를 찬미하는 아침이다. 째째째잭 창 너머 넘치는 참새 말 통역은 여전히 오리무중. 그럼 어떠랴. 넘실대는 초록과 강물이 내 것이요, 사랑하는 시와 사람들과 함께 할 하루를 선물로 받았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점박이 개똥지빠귀가 되어 뜨겁게 이 여름도 짖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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