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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나를 버린 한국이… 따스한 온기에 가슴 뭉클'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 입양인들이 우리 정부가 마스크를 지원한다는 소식에 보인 반응이다.

펜데믹이 된 코로나19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마스크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해외로 입양된 그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부모는 배라도 곯지 말라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절박한 심정으로 자식을 떠나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무책임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자신을 버린 조국과 부모에 대한 분노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만 같다.

살고 있던 집을 헐어내고 새로 짓기로 했다. 짐은 전문 보관창고에 맡기기로 하고 원룸으로 거처를 정했다. 우리 부부는 간단하게 입을 옷가지 몇 벌 챙겨서 이사하면 되었지만, 문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달마였다.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원룸으로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마땅하게 키울 곳이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집을 지으려면 몇 개월이 걸리니 애견호텔이나 애견 삽 같은 곳에 맡길 수도 없고 집을 짓는 공사 현장에 매어둘 수도 없어 막막했다. 고심 끝에 시골에 계시는 직장 동료의 부친께 달마를 맡기기로 했다. 마침 비슷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던 참이니 같이 키우겠다며 흔쾌히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강아지를 맡긴 지 5일이 되던 날, 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아지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며 걱정이셨다. 처음 음식을 먹지 않을 때는 하루 이틀 지나면 적응하리라 생각하고 기다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료나 간식을 주거나 쓰다듬으려고 하면 으르렁거리며 덤벼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한 번 다녀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급히 차를 몰아 시골로 달려갔다. 어르신 댁 대문 밖에 차를 세우자 달마는 펄쩍펄쩍 뛰며 야단법석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골목 언저리에 엄마가 보이기만 하면 한걸음에 달려가던 내 모습 같았다. 달마를 안아 주며 가져간 간식을 내놓았다. 그동안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간식 먹는 모습이 안쓰러워 천천히 먹으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바짝 마를 정도로 음식을 먹지 않았던 녀석이 내가 주는 간식을 받아먹으면서 꼬리 흔드는 모양에 코끝이 찡했다. 버려진 줄 알았다가 밥 주던 사람이 다시 오니 반가웠을까. 껑충거리는 모양은 금세라도 날개를 달고 날아갈 기세였다.

"저 녀석이 차 소리도 알아듣는 것 같네, 자네 차 소리 들리니까 얼마나 좋아서 날뛰는지…."

어르신은 어이없다며 실소를 지으셨다. 달마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잠시 떨어져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일까. 한나절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료와 간식을 먹으며 잘 놀았다. 달마를 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미안하다고, 집 다 지으면 데리러 올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할아버지와 잘 지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한 당부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그 뒤로 달마는 다행스럽게 밥도 먹고 잘 뛰논다고 어르신께서 연락을 주셨다.

동물도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밥을 먹지 않고 애를 태우는데 어린 나이에 해외로 입양되었으니 가슴속에 얼마나 맺힌 게 많았을까.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버림받았다는 심리적 허허로움까지 어쩔 수는 없었으리라. 어쩌면 가슴 속 깊은 곳에 소외감을 묻은 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지원한 마스크는 그냥 마스크가 아닐 것이다.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을 조국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정부가 해외입양 한국인들에게 마스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입양인들은 언론을 통해 감격스러운 심경을 전했다.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한국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한 입양인은 '이번에 고국에 관한 생각을 바꾸게 됐다.'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겨우 마스크 몇 장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마스크는 자신을 잊지 않은 조국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되찾게 했고, 그것은 그들이 살아갈 험한 세상에 힘이 되고 온기가 될 것이다. 자신을 버린 나라, 그래서 잊고 싶었던 조국에 대한 원망을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마스크 몇 장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가장 좋은 마스크를 넉넉하게 보내 주세요. 우리가 좀 더 아낄게요."

마스크를 보내기로 했다는 기사에 댓글을 달면서 조국과 민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강대국 틈바구니의 작은 나라, 외세의 횡포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나라 대한민국, 이 나라가 나의 조국이라는 것이 눈물겹도록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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