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962년 국내 최초 공업센터 건설…산업 근대화 토대를 놓다
[+영상] 1962년 국내 최초 공업센터 건설…산업 근대화 토대를 놓다
  • 전우수 기자
  • 2020.06.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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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와 함께하는 우리가 몰랐던 울산]
1. 한국 경제개발의 원점(原點), 울산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 몰려든 울산시민들. 국가기록원 제공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 몰려든 울산시민들. 국가기록원 제공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했다. 과거로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자는 의미다.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일수록 과거의 흔적을 통해 지혜를 배우는 온고이지신의 자세가 요구된다.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한삼건 명예교수와 동행하며 울산의 현장 구석구석 역사와 배경 등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우리가 몰랐던 울산'을 연재한다. 편집자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와 함께 연재물을 시작하면서 지역의 과거 흔적을 되돌아보는 일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한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 도시공학과 니시무라 유키오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모든 도시는 과거로부터의 연속 위에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는 도시는 없다. 도시는 도시생활환경에 대해 과거에 이루어진 인간 개입의 집대성이다. 따라서 도시의 장래를 위한 지침을 얻기 위해서는 도시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그것을 장래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과거를 바르게 평가하고 현재의 도시 속에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게 니시무라 교수의 주장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우리가 몰랐던 울산'을 통해 울산을 이루는 구성원들에게 지역사회의 지난 흔적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스스로의 자긍심을 키우고 시민의식을 채워가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현면 매암리 납도 언덕서 기공식
울산 넘어 민족적 번영 역사적 사업
제1차 경제개발계획 보란듯이 성공

1967년 경제개발 자축 공업탑 건립
울산시민과 정부 벅찬 자부심 담아
지역사회 이해 접근성 개선 고민 필요

# 세계 최빈국서 국가 경제기적의 신화 만들다
한 교수는 연재물의 첫 순서로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원점(原點) 울산'이라는 소제목을 단 의미에 대해서, 울산이라는 도시가 대한민국 경제개발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의 핵심에는 늘 '울산'이 있었다. '울산'은 사실상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디딤돌이요, 시금석이요, 견인차였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정권주체였던 시절인 1962년 2월 3일, 칼바람 매섭던 당시 울산군 대현면 매암리 납도 언덕에는 역사적인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공업센터 선언을 했던 박정희 의장조차 100% 확신할 수 없었던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은 5년 후에 보란 듯이 성공을 했고, 여기에서 얻은 자신감은 지금 선진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울산이라는 천혜의 땅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울산 땅에서 땀을 흘린 근로자와 문전옥답이며 고향마을을 버리는 희생을 감내한 시민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없다. 1964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불과 76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울산에서 거둔 성공이 있었기에 1962년 당시 2.1%에 머물렀던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까지 연평균 8.9%로 끌어 올리는 초고속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경제기적의 신화는 울산에서 태동하고 울산이 원점, 그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62년 2월 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가기록원 제공
1962년 2월 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가기록원 제공

 울산이 대규모 공업센터 건설지로 낙점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 교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울산이 공업센터로서 개발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른 근거를 제시해왔고, 이번 동행의 자리에서도 같은 주장을 언급했다. 한 교수는 "일반적으로 5·16 이전부터 삼양사를 세운 김연수 회장과 이병철 삼성회장이 이끄는 한국경제인협회와 남궁연 극동해운 사장 등이 울산 개발을 건의했다거나 박정희 의장의 절친이자 최고회의 경제고문이었던 김용태의 건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울산공업센터 개발은 일제 강점기의 개발 유산이라고 본다. 울산은 이미 일제강점기때 최적의 임해형 중화학공업단지라는 검증을 마쳤고, 대현면 일대만 해도 112만평의 매립 계획과 109만평의 적산 토지가 확보돼 있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한 약속의 땅이었다"고 말했다.

울산공업센터가 들어서면서 울산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67년 건립한 공업탑. 박칠성 옹 제공
울산공업센터가 들어서면서 울산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67년 건립한 공업탑. 박칠성 옹 제공

# 공업역사 대표적 상징물 '공업탑'
일행은 울산의 공업역사의 대표적 상징물인 공업탑을 먼저 찾았다. 한 교수는 울산의 공업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상징물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남구 신정동 6호광장 가운데 서 있는 공업탑이라고 했다.
 공업탑의 정식명칭은 본래'울산공업센터기념탑'이다. 공업탑은 1962년 당시 울산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명되고, 울산공업센터가 세워지면서 울산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67년 4월 20일에 세워졌다. 보다 정확한 건립 이유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진행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성공을 위해서라는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울산개발 그 자체였다. 공업탑 건립은 이 일을 기념하고 세웠다고 하지만 더 큰 의미가 따로 있다. 탑이 세워진 1967년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리에 끝나고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해다. 이 공업탑 건립의 진정한 의미는 경제개발 계획 성공을 자축하고 우리의 자신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 당시 공업탑 건립 예산은 500만원으로, 청와대와 울산시가 각각 절반씩 부담했다"

 한 교수는 공업탑을 디자인하고 시공한 박칠성 씨로부터 전해 들은 공업탑의 각 구조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박 씨는 함경북도 경성군 출신으로 1949년 평양 미술대학 조각학과를 졸업하고 1953년 속초수복 기념탑(모자상), 1962년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탑, 1973년 면암 최익현 동상 등을 제작했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행사장(하단 나무 숲)이었던 한국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인근 공단 전경.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행사장(하단 나무 숲)이었던 한국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인근 공단 전경.

 광장 한 가운데 위치한 공업탑은 톱니바퀴 모양의 기반 위에 철근 콘크리트물 다섯 개가 기둥으로 되어 있고, 상단부에는 톱니바퀴가 둘러져 있고 월계수 잎으로 둘러싼 지구본이 있다.

 콘크리트로 된 다섯 기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인구 50만을 상징한다. 경제개발이 화두였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10만명이 채 안되던 울산의 인구가 50년 안에 50만명이 되기를 염원하는 내용이었다. 탑 상부의 지구본은 세계 평화를, 월계수 잎은 승리를, 톱니바퀴는 공업도시인 울산을 상징하며, 울산이 세계로 뻗어나가 공업 한국의 승리를 맞이하자는 뜻을 담았다.

 탑의 앞뒤로는 청동 남성군상과 대리석 여성상이 자리 잡고 있다. 망치와 돌덩이를 들고 있는 남성군상은 '산업역군상'으로 근면과 인내로 울산을 건설하자는 취지를, 여성상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승리'를 염원한다.

공업센터기공식 장소였던 한국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공장 내에 세워진 '한국 공업입국 출발지 기념비'.
공업센터기공식 장소였던 한국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공장 내에 세워진 '한국 공업입국 출발지 기념비'.

# 기공식 치사문·선언문 등 기념물도 보유
공업탑 광장에는 이외에도 기념탑 건립취지문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공업센터 지정 선언문이 있다. 한 교수는 그 중에서도 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문수로 방면의 건설인상 아래에는 박정희 당시 육군 대장 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및 울산공업센터 지정 선언문이 적혀 있고, 그 옆에는 기념탑 건립 취지문이 별도로 세워져 있다. 이후 2012년에는 울산공업센터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울산도약 제2선언문이 공업탑 정비공사 이후 공업탑로터리 내 두왕로 방면에서 제막했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은 1962년 2월 3일 있었던 공업센터 기공식의 치사문을 새겨 넣은 것이다. 한 교수는 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의 '민족' '겨레'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 곳 울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며,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일 것입니다. ~이하 생략.'

 한 교수는 "기공식 치사문에는 '민족'이나 '겨레'라는 단어가 아홉 번이나 등장한다. 당시 정부가 울산공업센터가 단순히 울산의 발전으로서가 아닌 대한민국, 나아가 민족적 번영을 위한 역사적 사업으로 추진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라고 설명했다.

울산국가산업단지 지정을 기념해 1967년 4월 세워진 공업탑(울산공업센터 기념탑)의 기념비를 확인하고 있는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왼쪽)와 본지 전우수 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울산국가산업단지 지정을 기념해 1967년 4월 세워진 공업탑(울산공업센터 기념탑)의 기념비를 확인하고 있는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왼쪽)와 본지 전우수 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시민 접근성 향상·보존방안 마련 절실
한 교수는 울산의 공업역사의 상징적 기념물인데도 불구하고 시민들과의 접근성이 차단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아쉬워했다.

 "공업탑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울산시민과 정부의 벅찬 자부심을 담았다. 그런 점에서 공업탑은 우리나라 공업화의 상징인 셈이다. 현재 공업탑은 여러차례 개보수를 통해 광장은 넓어지고, 시설물도 고쳐지거나 새것으로 교체됐다. 그러나 지금의 공업탑은 시민의 접근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외딴 섬처럼 돼 있다. 치사문, 선언문 등 실제 시민들이 직접 보고 지역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치있는 시청각 자료인데도 불구, 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다. 공업탑 광장으로의 접근을 위한 지하도로나 육교 등 시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행은 울산의 산업사를 태동케 한 또 다른 장소인 남구 매암동의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있던 현장이다.

 한 교수는 울산의 공업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 상징물이 동양나이론(현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임직원들이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30주년을 맞아 1992년 6월 1일에 세운 기념비에 주목했다.

 "'한국 공업입국 출발지'라는 제목의 이 기념비는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 뒷면에는 "민족적 번영과 복지를 마련하기 위한 한국 공업입국의 출발지가 된 이곳 발파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정성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합니다"라고 새겼다.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정부도 울산시도 아닌 기공식 현장에 자리 잡고 있는 민간기업이 기공식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기념비를 직접 보기 위해서는 사측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한다.
 태화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울산공업센터의 흔적을 증명하는 부지와 기념물들에 대한 보존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전우수기자 jeusda@ulsanpress.net
 

● 한삼건 교수

·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 일본 교토(京都)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 건축학 전공 박사과정 졸업(공학박사)
· 현) 울산광역시 지역혁신협의회 위원장, 울산광역시 동구 도시디자인 위원회 위원장, 울산시민연대 도시센터 대표, 남구고래문화재단 이사,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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