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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에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해 보고자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문한 지가 어느새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뤘던 인도 성지순례 참가를 이번에는 비로소 뜻을 이루었다. 16박 17일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이라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지만, 최종 결정이 됐을 때는 무척 기쁘고 설빀다.

기본교리 과정 <부처님의 일생> 부분은 인도를 가보지 않고서는 논할 수 없는 필수코스였다. 더군다나 평소에 따르는 지도법사 법륜스님과 전 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2차에 걸친 사전 안내 교육은 철저했다. 순례 기간 지켜야 할 수칙과 마음가짐, 중요 성지의 브리핑 등은 각오를 새로이 하게 했다. 개인 세면도구 같은 필수품은 물론이고 공용 물품과 17일 동안 먹을 식량을 챙기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았다. 습한 나라에서 긴 기간 소요되는 안전한 먹거리를 준비하면서 몸은 이미 인도 땅에 가 있었다.

드디어 출발의 날이 왔다. 새벽 3시, 인도 직항 노선이 없어서 일본을 경유했다. 머나먼 지구 저편 부처님의 나라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채 풀리지 않는 피로 속에 새벽 기도를 마치자마자 제1일 차 여정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수행자의 본분으로 함께 한 450명 도반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11대 버스의 대오를 이뤘다.

일정에 따라 최초의 설법 장소인 사르나트로 향했다. 인도에서는 비교적 도심으로 알려진 곳이었지만 도로변 풍경은 낯설었다. 규모가 높고 긴 담장에 덧대어 색바랜 천으로 얼기설기 엮은 볼품없는 오두막들이 휙휙 지나갔다. 겨우 한두 식구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임시 공간이었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맨발 차림의 아이들이 진흙탕 길을 헤매고 있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이국 만 리 떠나온 여행객의 마음은 촉촉이 젖어 들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감상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동 거리가 멀어 하루에도 몇 군데를 답사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말로만 듣던 순례길은 며칠이 지나면서 이윽고 발에 물집이 터지는 고행길로 실감이 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자리한 바라나시 갠지스강의 화장터를 들렀다. 매캐한 연기와 알 수 없는 적막이 강을 가득 메웠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기막힌 현실을 바로 앞에서 목격했다. 활활 타는 장작더미에 육신을 태우는 남은 자의 고통은 검은 연기 속에 스며들어 하늘로 피어올랐다. 나는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그러구러 순례는 종반으로 치달았다. 이제는 네팔 국경을 넘어 룸비니와 카필라성을 답사하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속 절차가 무려 10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일행 중 어느 한 사람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그새 부처님이라도 된 것 마냥 평온하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한 상상과 기대 속에 품고 있던 룸비니 동산을 마주하니 그리움이 밀려왔다. 이곳이 불교 순례자들의 영원한 성지가 아닌가? 부처님의 탄생보다 더 큰 의미를 논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곳에 서니 내가 꼭 그 품에서 태어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룸비니 동산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필라성은 부처님이 왕자 시절을 보내던 왕궁터였다. 거대하고 광활한 성을 둘러보며 어릴 때부터 이곳을 무대로 성장하며 도를 깨우쳐 훗날 수많은 불제자들을 길러낸 모태가 된 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침 지도 법사님은 <어머님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마야부인 어머니의 위대한 모정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였다. 2600년 전 그 당시와 오늘이 하나되는 거룩한 순간에 가슴이 울컥했다. 책으로만 대했던 위대한 붓다의 생생한 발자취를 따라간 길 위에서 나는 인간 붓다로 다시 태어났다.

여행은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보게 하는 소중한 체험을 선물해 준다. 그것이 목적이 있는 순례길이라면 더더욱 그런 것이다. 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수많은 관계를 맺어오면서 포장하지 않은 내 참모습과도 마주한 시간이었다.

서슴없이 다가와 손을 잡던 인도 아이들의 까만 눈망울을 잊지 못한다. 가난한 나라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그 눈빛만으로도 다정했던 순수한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살아왔는지 참회가 되었다. 지금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한 짐 안고 있는 탐욕을 가볍게 내려놓는 힘을 기른다.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받아 기꺼이 따를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 아주 오래된 새길을 답사한 지구 저편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의 가슴 벅찬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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