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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펼쳐놓은 축제 자리다. 축제에 초대받은 손님답게 들뜬 기분에 발보다 마음이 앞서 달린다. 오늘따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장범준의 '벚꽃 엔딩'이 달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벚꽃 잔치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축가는 없을 듯하다.

분위기 탓일까. 여느 때와 달리 선남선녀 커플들이 유독 눈길을 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봄바람, 꽃바람에 환호하는 인화의 물결이 오색 무지갯빛이다.

봄꽃으로는 단연 벚꽃이 으뜸이다. 나무 크기의 웅장한 면에서도 당해낼 꽃나무가 없다. 일찍 핀 꽃잎이 눈꽃이 되어 흩날리는가 하면 개화에 굼뜬 벚꽃은 이제야 설레는 숫처녀의 젖 몽우리만큼 부푼 꽃망울을 툭 툭 터뜨려 여린 감성을 자극한다.

살랑대는 미풍에도 미련 없이 풍장으로 생을 마감하는 벚꽃의 일생, 소멸 또한 깔끔하다. 굵고 짧게, 사멸이 저리 아름답다면 죽음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벚꽃 잎을 시(詩)적으로 팝콘이나 꽃비, 눈꽃으로 묘사하는 것도 한 치 추함이 없는 순백함에 있지 않을까.  

벚꽃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60~70년대 내 고향 진도에는 벚나무가 흔치 않았다. 유일하게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이 산골 마을 '사천리'의 작은 사찰 쌍계사였다. 그곳은 우리가 해마다 봄 소풍 가는 지정 장소였다. 소풍의 취지가 자연관찰이 목적이고 보면 매년 가는 곳보다 근교 들이나 산이 바람직할 터인데, 우리는 늘 벚꽃이 만개한 쌍계사를 택했다.

지금은 화가 '허백련' 일가의 기념관 '운림산방'이 들어서 유명한 관광명소로 개발됐지만, 그때는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오지였다. 비탈길을 비지땀 훔치며 걸어도 마음은 달떴다. 몰래 꿍쳐놓은 돈을 아낌없이 풀어 전에 없던 인심이 후해지는 때도 그날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가자마자 벚꽃 그늘에 자리를 잡은 건 물론이다. 그날만은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밴또'를 자신 있게 펼쳐 놓았다. 평소에는 꽁보리밥에 김치만 달랑이라 손으로 가리고 먹는 것이 예사였다. 맛난 '밴또' 밥을 소풍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는가. 소풍의 대미를 장식할 하이라이트가 있었으니, 꽃잎이 흩날리는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즐기는 오락시간과 보물찾기 놀이였다. 희비가 엇갈렸지만….

그 시절 흔히들 도시락은 '밴또' 벚꽃은 '사쿠라'라고 불렀다. 화투짝에 나오는 벚꽃도 '사쿠라'라 하지 않았던가.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기르는 탁란조처럼 일본말이 주인 행세 하는데도 어느 누구 그 말의 진의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이 없었다. 해방은 되었지만, 먹고사는 일이 급해 일본 말을 쓰면서도 그 말을 쓰는 것에 옳고 그름을 가릴 여유도, 문리도 트이지 않았던 시절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쿠라'가 일본 국화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벚꽃을 좋아하던 마음에 흠집이 생겼다. '사쿠라'는 단순한 벚꽃의 일본말인데도 간사하기 짝이 없는 일본인과 동일시했다. 군중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좋지 않은 감정의 옷을 입으면 싫어지기 마련인 게 인지상정이었다.

사실 벚꽃은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일 뿐, 그 나라의 국화가 아니라고 한다. 문화적 동화 수단으로 빼앗은 땅에 자국민을 이주시켰고, 그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좋아하는 벚나무를 옮겨 심은 유화정책의 하나였다. 정황상 일본 국화로 오인된 것이리라.

벚꽃이 이 땅에서 사라진 건 해방을 맞으면서부터다. 일본이 패망하자 성난 민중들이 들고일어나 일본인이 심어놓은 벚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냈다. 얼마나 원한이 맺혔으면 말 못 하는 나무에마저 한풀이 했을까. 벚나무가 이 땅에 다시 들어온 것은 1960년대부터다. 영향력 있는 일본 기업인, 재일 교포가 묘목을 기증해서 들어왔다. 그때 들어 온 벚나무로 진해 벚꽃길, 여의도 벚꽃길이 새로 단장하게 돼 지금은 벚꽃 축제 명소가 됐다.

지난 2014년에도 어느 노인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에 조성된 벚나무를 벌목하다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의사당 옆에서 벚꽃 축제가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 노인을 보면 지금도 벚나무에 대한 정화되지 않은 민족 감정이 살아 있는 것이다. 무리는 아니지 싶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창씨개명까지 감행한 무리가 아닌가. 개인적으론 그 시대를 산 사람이면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봄이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벚꽃이다. 여기저기 벚꽃길이 조성돼 있다. 지방 자치 단체가 나서서 가로수를 벚나무로 교체하는 걸 보면 벚나무에 따라다니던 주홍 글씨의 불명예는 벗은듯해 다행스럽다. 밤은 깊어 가는데 벚꽃축제 막은 내릴 줄 모른다. 다들 화사한 꽃잎을 사뿐히 즈려밟는 마음이 이미 시인의 마음이다. 마음, 마음들이 인파에 떠밀려 꽃바람 속을 유영한다. 수많은 벚꽃 등과 꽃비, 왁자한 인파의 환호성이 짙은 어둠을 강하게 밀어내고 있다. 오늘만은 쉬 어둠이 내릴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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