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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옥

수몰된 우리들의 밑바닥엔
고래 지느러미로 그린
암각화 몇 장 일어서고 있다
고향을 떠나보낸 마음
산 하나가 물속을 지키고
사연댐에 묻어버린 호밋자루로
감자를 캐는 한실마을 사람들
노를 젓듯 세월을 저으며
가난을 견딘 나루터엔
자운영만 무성히도 피어나는데
주인 잃은 염소들은 사연댐을 지키고
오지가 된 소암골 바람만 다녀간다
바다에서 돌아온 늙은 고래는
이제 반구대에 정박했다
오랫동안 떠돌던 구름도
한실마을에 닻을 내렸다

△함영옥 시인: 울산 문학 신인상 수상. 울산 문인협회 회원. 울산 북구문학회 회원. 갈꽃문학 동인. 詩나브로 동인. 여수 해양문학상 공모전 수상.

이미희 시인
이미희 시인

저마다의 고향은 언제나 가슴 밑바닥에 물빛처럼 살고 있다. 세상 규격은 한없이 넓어지지만 우리들의 고향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가슴속을 비집고 살고 있다. 사연댐에 수몰된 한실마을은 암각화 몇 장의 사연마다 고래 떼를 품고, 고향을 떠나보낸 마을 사람들은 물속 산 하나로 서서 세월을 젓는다. 먼 선사시대 바다 양수와 놀던 고래처럼 가슴 밑바닥에서 물질하는 한실마을은 그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암각화로 새겨졌다. 천전리 암각화에 '닻'을 단 시인의 뱃머리를 따라가 본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노래 문학의 시초였을 노동요가 들린다. 노랫소리를 들으며 실한 밭을 일궜을 한실마을 사람들의 호밋자루가 춤춘다. 울산만에 존재한 해양어록들과 육지 동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에서 기록되지 않는 노래가 선명한 걸 보면 한실마을 사람들의 삶도 그땐 즐겁고 융성했으리라. 시인은 수몰된 가난을 견딘 나루터에서 무성히 피어난 자운영을 발견하며 희망을 심는다. 주인 잃은 염소와 소암골  바람만 다녀가는 그곳에도 고향의 소리는 따뜻하게 물결치고 있으리라.

시인은 고래가 더 늙기 전에 반구대에 정박하길 바란다. 희미해져 가는 선사시대의 기록과 삶의 문양들을 물속에서 건져내고 싶은 게 아닐까. 시인의 심연에서 새로 자란 무늬들이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반구대에서 수많은 희망 무늬들이 깊고도 짙은 문양을 드러내며 율동한다. 역사는 반구대 암각화에 실린 그림 속의 말들을 전하고 싶다. 오랫동안 떠돌던 구름도 한실마을에 닻을 내린다. 더 멀리 나아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그 날이 멀지 않음을 알기에.  이미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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