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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모 방송국의 트로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다른 방송국에서도 우후죽순처럼 트로트 관련 프로를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거의 하루 종일 트로트 방송을 볼 수 있다. 전화로 트로트 곡을 신청하는 어느 프로그램을 보면 고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참여를 하고, 오백 번 천 번 이상 전화를 해야 겨우 연결될까 말까 할 정도라니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중이다. 가히 트로트 전성시대다.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중가요 엔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대중가요이다. 정형화된 반복적 리듬과 남도민요의 영향을 받아 떠는 창법이 특징이다. 1950년대 후반 서양 음악 유입이 본격화 되면서 트로트가 가진 애수어린 느낌과 신파성이 왜색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미국이나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창법을 개발하면서 꾸준히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가왕이라 불리는 조용필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 트로트 가수였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듯 새삼스럽게 부는 트로트 열풍. 사람들은 왜 이렇게 트로트에 열광을 할까. 기존 예능에 대한 식상함, 옛것에 대한 새로운 향수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뉴트로 열풍, 코로나19 감염병이 장기화 되면서 실외 경기나 공연이 중단된 데 대한 반사이익, 혹은 번잡한 세상에서 단순하고 익숙한 리듬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고 싶다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을 추구하는 세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트로트 유행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최근 여러 가지 사회 변화나 사건을 접하면서 트로트 열풍이 공정사회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로트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를 주도하는 것은 기존 트로트 가수가 아닌 새롭게 경쟁을 통해 선발된 신인가수들이다. 
 
트로트 유행을 이끌어 온 <미스터 트롯>의 경우 참가자가 1만5,0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예비 심사로 걸러진 101명의 트롯맨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매주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마지막에 선발된 인원이 7명. 이런 정예들의 실력이 어찌 안 좋을 수 있겠는가. 출연진의 면면도 기존 가수, 음악 신동, 예체능프로그램 출신 등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심사위원과의 친분관계도 있을 수 있겠는데 공개 프로그램이어서인지 냉정하게 평가를 하는 편이다. 
 
실제 그 전 프로인 <미스 트롯>에서는 심사위원의 친구가 최종심에서 탈락된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공정한 심사를 통해 검증된 가수를 내보내기 때문에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닐까.
 

사실 연예계도 수저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수저론을 공개적으로 공고히 한다. 연예인 가족이나 자녀라는 이유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얼굴을 알리고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데뷔를 한다. 엄청나게 노력을 해도 출연 기회조차 얻기 힘든 일반인은 얼마나 박탈감을 느끼겠는가. 
 
트로트 방송이 인기를 끌 때 정치인 자녀의 입학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SNS를 통해 정의를 부르짖던 분이라 배신감과 분노가 더 컸다. 모 국회의원 자제는 슬그머니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다른 지역구에 출마하기도 했다. 부모나 지인 찬스를 이용한 병역 특혜나 부정 취업 사례는 또 어떤가. 이런 '선택적 정의' 앞에 좌절하고 실망한 시민들은 매회 최선을 다하고 실력으로 승부하여 공정하게 살아남은 트로트 가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물론 트로트 프로와 방송국의 보도 행태는 별개이다.)
 
또한 새로운 트로트 가수의 탄생은 우리나라에 희귀하게 남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사다리 걷어차기가 확산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어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티끌 모아 태산' 만큼이나 화석화된 속담이 되어 가고 있다. 개천의 가재, 붕어, 개구리가 어찌 감히 천룡인의 세계를 넘본단 말인가. 그런데 새로운 트로트 가수들이 개천을 벗어나 용이 되는 신화를 우리 앞에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인간극장 같은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컸다거나, 부모의 이혼으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등 과거 트로트의 특징 중 하나인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적 요소가 그들에게 있다. 
 
요컨대 사다리의 맨 아래층에서 꼭대기로 뛰어오르는 성공 스토리. 하지만 그것이 날개 달린 천마 덕분이 아니라 사다리를 하나씩 야무지게 밟아가며 자신의 퀘스트를 완성하는, 진검승부를 통한 고전적인 성공담이라 사람들은 더 열광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내로남불의 선택적 정의에 함몰돼가는 사회에 대한 경고음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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