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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바디

                                                                   엄태지

물류창고 앞에 윙바디들 모여있다
광야에 내린 독수리 떼처럼
들어 올린 날개는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지
접으면 빈틈이 없어진다
그러나 나는 저 날개들이 한 번도
펄럭이는 걸 본 적이 없다.
더 꽉 닫아걸어야 안전한 길
별은 멀고 곳곳에 블랙아이스
날아오를 날이 있을 거라는 믿음만 펄럭인다
밀리는 곳곳
정체된 운송료의 막막함처럼
내비게이션도 찾아가지 못하는 목적지가 있는데
무엇을 실고 어디로 가는가
철커덕 날개가 닫힌다
비상을 위해
천천히 길 위로 올라가지만, 아직 난
저들이 날아올랐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너무도 당당하여 슬퍼 보이는 날개
어느 별까지의 운송장을 저들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윙바디 한 대가 속도를 올린다

△엄태지: 충북 충주 출생. '시와정신' 등단.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윙바디 날개가 펼쳐지는 것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한다. 서서히 올라가는 날개의 '각'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그저 아이처럼 신기했다. 그 때까지 나는 덕지덕지 생의 내장이 다 비치는 이삿짐 트럭이나 잘해야 파란색 천막지로 동여맨 짐칸의 풍경에 익숙했던 터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날갯짓이 놀랍기만 했다. 그 때는 그 각이 예고하는 방향이 있다는 것을 미처 살피지 못한 채 그저 단정하고 절제된, 소위 '각 잘 잡힌' 그의 품새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날개에 미리 장착된 각은 이미 착지 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러니까 그 날개는 비상을 위한 기다림이 아니라 우아한 착지를 꿈꾸도록 설계된 아이러니인 것. 그의 착지는 서두르는 법도 없고 당황하는 순간도 없이 늘 신중하고 정확하다. 그래서 착지 후 접힌 날개는 "빈틈조차 하나 없"이 침묵에 든다. 그가 침묵에 들어야 날개의 내부는 안전할 것이므로.

시인은 그 날개가 한 번도 펄럭이며 날아본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날아오를 날이 있을 거란 믿음만 펄럭"일 뿐이라고. 온몸이 멋진 날개이지만 정작 한 번도 날지 못하는 '각'의 비애를 읽어낸 것이다. 그것을 통해 시인은 날개를 "다 콱 닫아걸어야"만 안전이 보장되는,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그 안에 무엇을 실고 가는지도 모르는 이 시대 삶을 시니컬하게 조명하고 있다.

시의 마지막에서는 윙바디 한 대가 속도를 올린다. 그가 속도를 올린다는 말은 날개를 접었다는 뜻이다. 철커덕 날개가 닫히고 비상을 위해 천천히 길로 들어선다. 윙바디 한 대가 달리고 있을 길 위에 나는 미리 가서 시인의 다음 말을 전하고 싶다. "너무도 당당하여 슬퍼 보이는 날개"라고, 백신 하나 얼른 전해주고 싶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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