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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천전리 각석. 문명대 교수 제공
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천전리 각석. 문명대 교수 제공

국보 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이 올해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지 50년이 됐다. 내년이면 또 국보 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발견도 50주년을 맞는다. 울산의 암각화 발견 50년의 주인공, 문명대 교수(80.·동국대학교 명예교수)를 천전리 각석 현장에서 만나 소회를 들었다. 편집자



1970년 12월 24일 아침. 서울을 출발한 문명대 교수 일행은 하룻밤을 경주에서 머물고 이른 시각 반고사가 있다고 알려진 대곡천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험하다는 소식에 친분이 있던 경주지역 일간지 주재 기자의 도움을 받아 육군보안대장의 지프를 얻어 타고 조교와 함께 동행했다.

이날 답사는 원효대사가 머문 곳으로 알려진 반고사(磻高寺)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문 교수는 1967년부터 동국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으로 참여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겸해왔고, 당시 고대 불교미술 유적지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던 중이었다.

수업 때문에 매번 이 같은 현장답사는 방학이 시작되는 첫날인 12월 24일 전후일 수밖에 없었다.
천전리 각석 발견이 1970년 12월 24일, 반구대암각화 발견이 12월 25일인 이유도 이런 학사일정 탓이다.
훗날 이 역사적인 발견을 두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기적'이라고 부르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크리스마스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조건이 이런 우연을 만들어 냈다.

그 해는 경주 인접지역인 언양권역의 불교유적을 살펴보는 3년 중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일행이 반고사터 추정 인근지역인 반구대 현장에 도착했지만 접근이 어려웠다.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각석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o999@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각석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o999@

# 반고사터 답사위해 방문했다가 발견
사연댐 수위가 목까지 차 오른 탓이다. 1965년 12월 준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매년 갈수기를 제외한 대부분 이처럼 반구대 주변 언저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지프까지 빌려서 현장에 도착했는데 반고사터는 물에 차고, 그저 망연자실 하고 있는데, 집청정 최경환이라는 노인이 저 위쪽으로 한 모롱이를 돌면 다른 절터가 있고 그 곳에 무너진 석탑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의 안내를 받아 하천변을 따라 걸어올라 가게 됐죠"

문명대 교수 일행은 이렇게 해서 역사적인 천전리 각석을 발견한다.
"천전리 현장에 도착한 시각이 낮 12시께 됐을 겁니다. 석탑의 흔적을 확인하고 주변을 살피는데 밭 아래 흙탕물과 이끼와 잡풀로 뒤덮인 바위 면이 보이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기아학적 무늬들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바위 면에 붙은 이끼 등을 떼어내 보니 기하학적 무늬 말고도 희미하게 랑(郞)자라고 새겨진 여러 한자들이 새겨진 명문이 보이는 겁니다. 이거 대단한 것이다 직감을 했죠"
천전리 각석이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유적 조사단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1970년 12월 24일, 지금으로부터 만 50년 전의 일이다.

1965.12.28 사연댐 준공
1970.12.24 천전리 각석 발견
1971.12.25 반구대 암각화 발견
1973.5.4 천전리 각석 국보 제147호 지정
1984 문명대·황수영, 암각화의 최종보고서 발간
1995.6.23 반구대 암각화 국보 285호 지정
2003 울산시, 서울대에 암각화 보전 연구용역 의뢰
2010 대곡천 암각화군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1 울산시, 대체수원 확보 전제 사연댐 수문설치 동의
2011 운문댐 여유수원 활용 무산
2013 울산시-국무조정실-문화재청 카이네틱댐 설치 MOU
2016 카이네틱댐 추진 백지화
2019 낙동강 물 문제 해소 MOU
2019 대곡천 암각화군 유네스코 등재 추진 시민단 발족
2019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 우선등재 목록 신청
2020 문화재청, 우선등재 신청서 보완 이유로 심의 보류
2020.7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목록 재신청 예정



문 교수의 당시 나이 서른 살의 청년. 80세 고령의 노인이 돼 버린 문 교수를 천전리 각석 현장에서 만나 감회를 물었다.
"어떤 말로 지금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벌써 50년이네요. 이 거대한 절벽 면에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오색찬란한 그림들을 그리고 새겼고,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정신수련을 하던 곳이 천전리 각석입니다. 한 평생을 암각화 연구를 하며 살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으니…"

# 두 달 간 조사 중 주민들 반구대 암각화 제보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이후 이듬해인 1971년 3월부터 두 달여간 천전리 각석 현장조사를 벌였다.
천전리 각석은 연구 결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린 유적으로 밝혀졌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천전리 각석은 조사단에 의해 첫 발견 된 이후 2년 5개월만인 1973년 5월 4일 '울주 천전리 각석 (蔚州 川前里 刻石)'이라는 명칭으로 국보 제147호로 지정됐다.

문 교수는 50년 만에 맞이하고 선 천전리 각석의 보존 실태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각석 훼손을 막기 위한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 우선 암벽 위에 우거진 수목관리를 해야 합니다. 수풀이 우거지면 일단은 경치가 좋아 보이겠지만 뿌리가 바위틈을 파고들어 결국은 각석의 문양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각석 발견 이후 초기에는 문화재청이나 울산시 등 지자체에 이런 문제들을 지적해서 제대로 관리돼 왔었는데, 지금의 상태를 보니 전혀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네요. 이렇게 되면 100년 갈 것이 10년도 못가고 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명대 교수가 천전리 각석에서 전우수 기자와 50년전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동균기자
문명대 교수가 천전리 각석에서 전우수 기자와 50년전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동균기자

문 교수는 수풀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암면 위로 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물길을 내고, 지붕 형태를 갖춘 개방형 구조물을 세워 각석이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큰 변화는 없겠지만, 이것이 천년만년 지나 우리 후손에게도 온전하게 전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 교수와의 대화는 반구대 암각화 발견 당시로 이어졌다.
"천전리 각석을 발견하고 그 이듬해 두 달여간 본격적인 현장조사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객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유적조사를 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구경거리 삼아 몰려들 와서는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저 밑에 대곡천변에는 사람들이 나무 하러 가기 전에 쉬기도 하고 낮잠을 자는 바위가 있는데, 그 벼랑 위에 호랑이 그림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학사일정도 있고 해서 겨울방학이 되면 다시 오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문 교수 일행은 1971년 겨울방학기간인 12월 25일 다시 지금의 반구대 암각화를 향한다.
이날도 사연댐은 집청정 앞까지 물이 차올랐다. 배편을 구해 집청정에서 물안개 피어오르는 대곡천을 따라 20분쯤 하류로 이동했을까. 문 교수는 먼 발취에서부터 반질반질한 바위 면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눈에 봐도 저것이다 싶을 만큼 대패로 깎은 듯 반반한 바위 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행했던 사람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저거다'를 외쳤지요. 하지만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1m 남짓한 면적에서 고래와 거북, 사람얼굴 형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이듬해인 1972년 봄부터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가면서 숨겨진 베일이 하나 둘 벗겨지기 시작했다.

반구대암각화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82년 8월 2일. 처음에는 경상남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57호로 등록된다. 첫 발견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국보 제285호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도 14년 뒤엔 1995년 6월 24일이다. 암각화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지 24년이나 지난 뒤에서야 가능했다.


문 교수는 그 이유를 잘라 말했다.
"무관심이죠, 무심해서 그런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문화재청도 그렇고 울산시도 그렇고 문화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암각화를 그렇게 소홀하게 놔 둘 수 있었겠습니까"

천전리 각석 선묘.
천전리 각석 선묘.

# "누구보다 소중히 아껴야 할 사람은 울산 시민"
반구대 암각화가 수도 없이 물속에 자맥질을 되풀이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 수문을 만들어야 한다. 울산시민들의 맑은 물 공급방안이 있어야 한다' 등 등 논쟁이 되풀이 되고 있는 상황을 보고 느끼는 심정은 어떠한지를 문 교수에게 물었다.

대답 대신 문 교수는 90년대 있었던 자신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90년대 초쯤 될 겁니다. 내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울산시에서 사연댐 높이를 지금보다 10m 이상은 높여야겠다는 취지의 안건을 문화재청에 제출한 겁니다. 지금도 암각화가 물에 잠겨서 난리인데, 현재보다 10m를 더 높이겠다는 제안을 했으니 도대체 이해가 돼야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반구대암각화는 물론이고 천전리 각석도 물에 잠겨야 하는 형국이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울산시가 두 세 차례에 걸쳐 이 같은 내용의 제안을 해왔던 것으로 압니다. 도대체 말도 안 된다며, 식수가 부족하면 그 대안으로 대곡댐을 건설해서 활용하면 될 일 아니냐, 댐이 상류에 들어서면 암각화도 보존하고 천전리 각석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강력히 반대해 결국은 안건이 부결처리 됐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지난 7월 3일 반구대암각화 현장에서 천전리 각석 발견 50주년 기념으로 '2020 대곡천 반구대 축제'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에 참석한 문명대 교수는 이렇게 인사말을 남겼다.
"서른 살의 청년이 각석 발견 50년이 지난 지금 80 노인이 돼 여러분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여러분의 암각화 보존을 위한 노력과 애정이 모아져 내년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이 되는 해는 암각화가 물속에서 반드시 건져져서 다시는 물에 잠기는 일이 없기를 희구해봅니다"

# 내년 연구 총망라한 연구서 발간 추진
문명대 교수는 2006년 퇴임 이후 대학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지금도 자신의 소장으로 있는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불교미술과 암각화 연구로 열정을 사르고 있는 문 교수는 내년 암각화 발견 50주년을 맞아 1984년 암각화 연구 보고서 발간 이후 처음으로 그동안의 암각화 연구를 총망라한 암각화 연구서 발간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울산시 명예시민이 된 문명대 교수는 말한다.
"울산의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이 시대에 전해 준 선사시대 하이라이트입니다. 누구보다 소중하게 보존하고 아껴야 할 주인공은 울산시민이어야 합니다. 시민의 숙원인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울산시민의 역량이 하나 돼 반드시 현실화 되리라 믿습니다"  전우수기자 jeu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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