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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잠겼다. 유난히 길고 지루한 장마에 결국 반구대암각화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2007년의 일이다. 지금부터 딱 13년 전이다. 당시 울주군을 출입하던 본사 사회부 최인식 기자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훼손 실태를 고발했다. 퇴적암층인 이곳 지형이 물에 취약하며 침수가 반복되는 현상을 방치하면 치명적이라는 내용이었다. 특종 보도였다. 그동안 반구대암각화 문제는 자맥질을 반복하는 안타까움을 전하는 수준이었지만 이 보도로 훼손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됐다. 

당시 반구대암각화 훼손 실태를 조사한 조홍제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강도가 약한 퇴적암면에 평균 1.5㎜ 깊이로 얕게 새겨진 암각화가 수천 년 동안 지속적인 풍화를 겪어온 데다 댐까지 건설돼 표면이 비늘처럼 일어나는 박리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반구대암각화의 암석 자체가 퇴적암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물과 상극이라는 사실도 강조됐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모든 문제를 제쳐두고 우선은 물에서 건져내고 물이 암각화 근처에 오지 못 하게 하는 것이 첫째였다.

현실이 시급했지만 주무 정부당국인 문화재청은 대학 연구소에 의뢰해 지표조사부터 벌이는 늑장 대처로 일관했다. 세계적인 인류문화의 보물인 바위그림이 발견된 이후 25년간 방치되다 국보로 지정된 것이 지난 1995년의 일이었다. 국보 지정 이후 달라진 것은 펜스를 치고 국보 안내판이 만들어진 것이 고작이었다.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는 민간에 내맡긴 채 남의 집 보물인 양 외면했다. 그러다 언론이 떠들기 시작하자 학술조사에 표면정밀 조사 등으로 요란을 떨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바로 그 시점이 불과 13년 전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화된 시점이다. 발견된 지 50년이 된 반구대암각화지만 초창기에는 이 정도로 홀대를 받았다. 몰랐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발견 이후 서울대 학술조사팀 등 전국의 유수한 대학 사학과나 박물관에서는 학술팀을 꾸려 탁본에 슈미터 해머질에 드릴질까지 감행했다. 국보지정 이전 20여 년간 벌어진 참상이다. 그 당시 대학에서 사학과에 다닌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은 학술조사를 명분으로 반구대를 찾아 바위그림 위에 먹칠을 하고 탁본질을 해댔다. 그래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그런 당국이 바로 대한민국 문화재청이다.

13년 전 울산의 신생 언론사인 울산신문이 반구대암각화의 훼손을 세상에 알렸다. 영향력이 작다 보니 초창기 파장을 크지 않았지만 중앙언론과 방송매체들이 세계적인 바위그림의 현실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주대 연구팀은 거푸집을 짓고 최첨단 도구를 사용해 반구대암각화의 훼손정도와 대책을 본격 연구했다. 지금 사용하는 기본 자료는 이 당시 만들어졌다. 울산대 연구팀은 지표조사를 통해 반구대암각화의 암석이 퇴적암층이라는 사실과 풍화정도가 4.5에 이르는 중대한 훼손상태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문화유산 기운데 가치평가 1위인 반구대암각화가 어찌 물고문을 당하고 있느냐며 항의가 빗발쳤다. 여론이 비등하면 정치가 손을 내밀기 마련이다. 당장 그때부터 정치권이 반구대암각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총리는 취임하면 공식 코스로 반구대암각화를 찾았고 여야 대표나 명망가들은 온갖 명분을 대며 암각화를 다녀갔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금방이라도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낼 것처럼 흥분을 했다. 직접 관계가 있는 자는 즉각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목젖을 세웠고 야당이나 환경단체는 문화재청을 성토하고 일부는 문화재의 소중함을 모른 채 식수만 고집하는 울산시민의 무지몽매를 추궁했다. 참 딱한 일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 대표는 울산시민은 왜 낙동강 물을 마시면 안 되느냐며 손가락질을 했고 어떤 국회의원은 울산의 가정마다 변기용량을 반으로 줄이면 식수가 해결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어쩌다 울산시민은 문화반역자가 돼버린 셈이다.  

울산시민들은 그래도 참았다. 뭐라고 해도 반구대암각화를 살려낼 수 있다면 본질과 비켜난 이야기들은 흘릴 수 있었다. 훼손을 고발하고 이를 여론화한 언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반구대암각화 문제가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다는 위안이었다. 암각화의 묵은 이끼를 걷어내고 물속에서 울음을 토해내는 고래를 건져 올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울산시민들이었다.

당장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 올리고 영구적인 보존의 필요성이 절실했지만 문제는 이미 건설된 사연댐이었다. 물을 빼면 암각화가 살지만 시민들의 식수문제가 난감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태제방이었고 물길 변경 등의 안이었다. 고민의 결과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모욕적인 언사도 들어야 했다. 대규모 토목공사 운운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13년 세월 동안 변한 게 없다. 이번에는 맑은물 공급을 전제로 수위조절에 나섰지만 여전히 될 것이고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만 있을 뿐 아무런 진척이 없다. 

지난 2010년 울산신문은 전국언론 최초로 지역신문 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기획취재에 들어갔다. 지금 여러 언론에 등장하는 포르투갈 포즈코아 암각화의 보존실태를 제대로 살펴본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포즈코아암각화 박물관 측은 한국언론 최초의 취재라며 울산신문 취재팀을 반겼다.

포즈코아 암각화 박물관 책임자인 페르난도 안토니오 가르시아 디아즈씨는 포즈코아암각화의 보존책을 설명하며 댐 건설 전에 발견된 자신들과 다른 상황인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댐을 지은 상태에서 발견된 암각화와 댐 건설 시작단계에서 발견된 암각화의 처리 문제는 엄연히 다른 사실인데도 이를 같은 사례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부 중앙언론과 문화재청, 정치권 등은 포즈코아의 사례를 반구대암각화에 그대로 대입시키려는 음모론을 획책했다. 결국 탁상공론의 반복이었다. 우리가 지금부터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반구대암각화의 온전한 보존과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반구대암각화는 무엇보다 인류 문화의 뿌리를 웅변하는 증거물이다. 지난 1971년 반구대암각화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암각화의 역사성과 상징성, 예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반구대암각화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인류사의 확장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함께 문화재 당국은 반구대암각화를 중심에 두고 한민족의 이동경로와 고대 인류사의 재구성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 단초는 무수히 많다. 알타이 지방을 기점으로 시베리아와 극동에 이르는 수렵문화의 유사성을 연구해야 한다. 그 하나의 단초가 시베리아 우르쿠츠크 인근에는 시스키스키 암각화다. 반구대암각화만큼 시련과 고초를 겪은 이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의 뿌리를 이야기해준다.

사실 이 암각화 이외에도 바이칼 인근 지역은 우리 민족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시스키스키 암각화는 불행하게도 1948년에 완성된 앙가라강 댐으로 인해 대부분 수몰됐다. 사슴과 사냥술을 묘사한 이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지난 2008년 내몽골 적봉에서 한국형 암각화가 발견됐다.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발견한 이 암각화는 바이칼에서 시작된 암각화의 흔적이 한반도 동쪽 끝 울산으로 연결되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문제는 현장에 있다.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는 사연댐이라는 인공구조물도 있지만 선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원시 가마터부터 각석과 누각은 물론 서원과 고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바로 여기서 울산의 문화적 토양을 일구고 울산이 세계 문명의 한 축이었음을 선포해 나가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4차산업이 요란하지만 울산의 미래 먹거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잘 모른다. 반구대암각화를 제대로 세팅하면 얼마나 엄청난 문화관광 자산이 되는지를 모르니 지금도 물에 잠긴 채 방치하고 갑론을박만 주고받고 있다. 딱하고 참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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