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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사람이 못하는 게 잘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을 웬만한 지인은 다 눈치를 챈 것 같다. 자신의 그런 약점을 뻔히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상대방도 밝혀야 좋을 것 없는 일인 줄 알기에 굳이 나의 약점을 꾹꾹 찌르지는 않는다. 그점 또한 나도 알지만 모른 척 그냥 살아간다.

이웃 주변 상가의 눈치 9단의 고수 사장님들이 나를 배려할 때 엿보이는 얄팍한 권위의식 내지는 우월감은 어쩔 수 없이 내 약점을 인정하게 한다. 물론 그때의 묘한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보소, 그거 그집에 있지요? 손님, 저 집에 가보소."
목소리에 평소와는 다르게 힘이 실려 있다. 마치 부실한 나의 밥벌이 능력에 대한 조력자라도 되는 듯한 눈치다. 아무려면 어떨까. 나름 나도 궁리라는 것을 하면서 사는데. 하기는 그 궁리란 것도 고수 눈에 보이고도 남겠지만 별 탈 없이 사는 것을 나는 그 알량한 궁리 덕이라 생각한다.

나라고 맹탕이기만 하겠는가. 그들이 이웃으로서 선을 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방책이 무엇인지는 짐작하고 있다. 본래부터 어디 나설 만큼 갖춘 것이 없는 사람이기에 생존 본능으로 체득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하기 전에 한 호흡 쉬는 버릇이 있다. 말을 아끼는 편이기도 하다. 말이란 오해가 생기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소통은 물 건너가고 가시거리를 삼켜버린 안갯속이 된다.

말도 길이 있다. 한 호흡 쉬는 일은 말이 길을 나서기 전에 목적지에 무사히 이를 수 있게 방향을 바로 잡는 일이다. 말도 생물이라 채비를 잘하고 나서도 여차하면 탈선하기 십상이다. 궤도를 벗어난 한 마디에 낯선 반응은 순식간에 따개비처럼 따라붙는다. 곧바로 상대방 표정에 그림자가 생기기도 한다.

상가에 새내기로 들어왔을 때는 하루하루가 카페인에 과다 노출된 사람처럼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경험했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도착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말에 덤까지 따라와 불쑥 나타날 때는 나는 거의 패닉 상태를 경험했다.

서른 해의 세월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 유용한 화법 하나를 터득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말하기 전 한 호흡 쉬는 버릇이다. 처음은 어색했지만 물벼락 같은 긴급 상황에 비하면 견디기가 한결 수월했다. 차츰 '잠깐 뜸들이기'에도 매료되기 시작했다. 나처럼 상황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말이 궁색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게 없었다. 사람이 한 호흡 동안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세상의 빛을 못보고 생각에 머무는 언어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이 입안에서 분주하다가 사라지면 안도와 평화를 느끼기도 했다.

사람이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어 서운할 때도 있지만 부족함은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는가 보다. 남편과 함께 시작한 유통업은 진심과 정성에다 말과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말과 유연성은 우리 부부에게 아킬레스건이었다. 사람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많은 노력을 한다. 그게 생존본능일 것이다. 다행하게도 무미건조한 언어습관을 가진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살 수 있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생의 여정 중에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행동은 물론 언어의 절제되고 다양한 매력을 유감없이 구사해야 입에 밥이 들어오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서른 해 연마한 화법이 제법 통하는 것 같지만 역시 눈치 9단의 상가 사장님들 눈에는 그리 탁월하게 보이지 않는가 보다. 누구도 우리와 같은 화법을 쓰는 이가 아직 없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방식을 존중해준다. 이미 깜냥을 알았는데 굳이 그 속을 아는 척해서 기죽일 일 없기에 그냥 지내는 것 같다. 나 역시 그 속을 그렇게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흔한 화법이 아니기는 해도 익숙해져서 나름 편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나와 무관한 일에는 소극적이다. 그러나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 적극적이다 못해 도를 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원칙과 기준이 비바람에 흔들리는 키다리꽃 무리 같아 본질을 읽는데 늘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도 부침이 심한 유통업의 현장에서 오롯이 본질을 읽으며 사는 일은 기적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던가. 어떻게 하다 보니 악수가 묘수가 된 내 화법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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