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대피하세요. 빨리요. 서두르세요."
지난 23일 오후 9시께 울주군 서생면 위양리 양암마을. 이 마을 김영래(62) 이장은 이날 천둥·번개가 계속 치고 빗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마을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마을 중앙에 흐르는 하천인 위양천이 무엇보다 불안했다. 4년전 태풍 차바 당시에 범람해 큰 피해를 낸 곳이기 때문이다. 하천 일대를 둘러봤더니 예상대로였다. 장대같은 빗줄기에 제방 둑 곳곳이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하천에는 거대 토사물이 쓸려내려오고 있었고, 하천 물은 점점 불어나 곧 넘칠것 같았다.
# 4년전 태풍 차바때도 큰 피해
이날 오후 9시 40분께 김 이장은 급히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대피방송을 하려했다. 그러나 방송기기가 번개를 맞은 탓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휴대전화로 일일이 하천주변 거주 주민에게 전화를 걸어 "하천 물이 불어나고 있으니 얼른 대피하라"고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김 이장은 유숙자(80·여)씨네가 먼저 떠올랐다. 고령이어서 대피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도착했을 때 아찔했다. 물이 점점 들어오는데도 세간살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김 이장은 고함을 쳤다. "사람이 떠내려가게 생겼다. 빨리 대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유 씨는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남편 최익해(83)씨와 함께 이장의 도움을 받아 대피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물에 휩쓸릴뻔한 순간이었다.
유 씨는 "이장님한테 혼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조금이라도 지체했으면 우리 다 죽을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급기야 오후 11시께 위양천 상류쪽 하천이 범람해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대피를 알렸다. 이곳에 사는 서용석(46)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급히 피신하기 위해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그순간 집 건물과 불과 20m 거리의 있는 위양천 석축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소리에 놀란 서용석씨네 가족은 이장의 도움을 받아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서 씨의 맞은편 집에 사는 신해동(70)씨 역시 집까지 찾아와 대피를 알리던 김 이장의 말에따라 옷을 입던 중에 하천 둑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신 씨 역시 가족을 데리고 마을회관으로 피신해 화를 면했다.
위양천 하류에 사는 김철규(84)씨네 집은 이미 하천에 휩쓸려 버린 상태였다. 김 이장의 대피 알림을 듣고 휩쓸리기전 빠져나와 마을회관에서 3일동안 지냈다. 인근의 이택근(61)씨도 김 이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급히 피신했다.
지난 23일 내린 국지성호우에 서생면 위양리 양암마을은 물바다로 변했다. 이날 김 이장의 대처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마을 주민들은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까지 몰렸다.
김 이장은 이날 빠른 판단으로 주민 8명을 구조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이장님이 대피 명령 안내렸으면 큰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30일 양암마을에서 만난 김영래 이장은 "그날 밤은 악몽이었다. 대피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다. 큰일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라며 "이날 폭우에 위양천 하류지역에는 사망사고까지 난 소식이 다음날 들려 가슴이 철렁했다"고 그날 상황을 설명했다.
# "잠수교 대신 새교량 설치됐으면"
주민들은 김 이장이 그날 상의를 입지도 못한채 비를 맞으며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전했다.
김 이장은 "그 상황이라면 마을 주민 누구였더라도 나처럼 했을 것"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지않아 천만다행이다. 수해 복구가 빨리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 이장은 이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잠수교를 철거하고 교량 설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장은 "위양천에 3개의 잠수교가 있는데 하천 흐름을 방해해서 범람된 것이어서 다리를 새로 설치하고, 둑 높이를 1m 가량 높여야 한다"라며 "울주군에서 농가, 마을 침수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봐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은정기자 usk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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