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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변희수

녹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너는 얼음을 가졌고 나는 심장을 가졌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저 개는 살아있다고 영혼에는 색깔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만둔 말이 하얗게 쌓이고 쌓여서 우리의 입을 틀어막아버릴 때
드디어 한 뭉치 흰 눈이 될 때

쌓이고 쌓인 말들은 어디로 던져야 하나요
처음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펄펄펄 눈은 내리고
펄펄펄 끓어 넘치는 것이 있어서

나는 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말을 던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돌팔매를 던져도 피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퍽퍽, 차디찬 가슴에 박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가능한 것을 물어보려다가
차가워졌지만

나는 잘 녹지 않으니까 어쩐지 고약한 사람 같고
희고 성스러워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눈이 부셔서 가장 먼저 녹는 사람입니까 하고 물어보았는데
입김이 닿은 곳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침을 흘리는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변희수시인: 1963년 경남 밀양출생.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11년 영남일보 '아주 흔한 꽃' 등단. 2013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집 '아무것도 아닌, 모든'(문학나눔도서),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 하겠습니다' 2018년 아르코 창작지원 선정. 2020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지독한 불통과 마주한다. 친밀해야 할 관계 속에서 소통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면 한없이 고통스러워진다. 의도치 않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말과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어떤 순간에도 말의 교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일방통행이 되고 만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내 말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거나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공감하려들지 않거나, 이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가진 나의 말이 도무지 가 닿지를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삼켜진다.

눈이 곧 나이고 내가 눈이 되기도 하는 관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자꾸 삼키는 것은 더 이상의 소통을 포기하게 만든다. 입김만 닿아도 녹는 눈사람. 녹는 것은 소통이다. 녹지 않는 것은 소통불가다. 그러므로 녹지 않는 것은 불통의 사람이다. 소통을 모르는 얼음을 가진 너, 나. 문제는 하지 못한 말이 눈처럼 쌓여서 마침내 입을 틀어막고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을 해야만 살 수 있다. '처음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펄펄펄 눈은 내리고'라는 모순의 상황들이 긴박하게 펄펄펄 끓어 넘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히기도 한다. 잘 녹지 않으니 다시 또 내가 고약한 사람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눈은 하얗다. 깨끗한 것은 왠지 성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가장 먼저 녹는 사람이냐고 묻는데 답은 엉뚱하게 입김 닿는 곳부터 먼저 녹아내리는 모순의 이외를 발견하게 만든다. 시의 맛이 빛나는 순간이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관계 패턴에 따라 그저 꾹 참고, 모르는 척, 아닌 척, 괜찮은 척 그렇게 웃으며 넘겨버리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얼음처럼 차가운 눈사람을 만들어간다. 공감이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라는 말처럼 참 어려운 걸음이기도 하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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