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규천(以管窺天)-대곡천, 난감한 수몰의 현장에서
이관규천(以管窺天)-대곡천, 난감한 수몰의 현장에서
  • 김진영
  • 2020.08.0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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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사자독해]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전국이 수해로 아비규환이다. 물길이 넘치자 소떼가 스스로 산을 향해 뛰어가는 장면은 말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다. 휴가를 맞아 모처럼 가족과 함께 힐링을 즐기려던 사람들이 생떼같은 목숨을 잃은 사고 소식부터 무너지고 잠기고 할퀴고 간 산하가 상처투성이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아침, 대곡천을 찾았다. 구곡을 휘감아 도는 안개와 습기는 신비로움을 넘어 태고의 기운을 느끼게 만들었다. 차분하고 느긋했던 심사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암각화박물관을 지나면서부터다. 대곡천은 더 이상 계곡이 아니었다. 긴 장마에 물이 불어 넘실거리는 건 당연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떤 경로로 떠내려온 것인지 모를 부유물들이 구곡을 장악했다. 아뿔사, 학소대 지난 집청전에서 반구대암각화로 이어지는 구간은 참담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펜스를 쳐둔 덕에 상당량의 폐기물과 쓰레기들이 반구대암각화 근방에 머물러 있었지만 미처 거두지 못한 부유물들은 암각화 코앞에서 우리들의 부끄러움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큰 비 오면 잠기기를 반복하는 반구대암각화지만 잠긴다, 대책을 세워라로 탁상공론만 십수년째다. 그런 세월 동안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채 이번에는 이런 난감한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 참담한 일이다.
문제는 원형보존이다. 그 주범은 다름 아닌 문화재청이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 해법은 처음부터 외길 수순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문화재청은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 탁상공론만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명분은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조건에 위배된다는 선동이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보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주요 이슈가 된 것은 울산의 지역언론과 울산시의 보존의지 때문이었다. 국보지정 이후 훼손을 방치해온 문화재청은 전국의 언론이 반구대암각화를 주목하고 세계적인 고고학 석학들이 반구대암각화를 찾아 나서자 보존의 주체가 자신들인 것처럼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반구대암각화 뿐만아니라 주변 경관을 포함한 것(대곡천 암각화군)을 원형이라고 주장하며 유네스코 잠점목록에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는 원형보존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필수요건이라면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과 그 주변까지 원형보존이 안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다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10여년 전 문화재청이 성과물처럼 내세운 '대곡천 암각화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기준을 제멋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울산신문은 지난 2010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언론사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현지 취재에 나섰다. 그 결과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시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이나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 △중요하고 전통적인 건축양식, 건설방식 또는 인간주거의 특징적인 사례로서 자연에 의해 파괴되기 쉽거나 역행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혹은 경제적 변혁의 영향으로 상처받기 쉬운 것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번 비로 물에잠긴 반구대암각화 주변에 각종 쓰레기가 떠내려와 더럽혀져 있다.
이번 비로 물에잠긴 반구대암각화 주변에 각종 쓰레기가 떠내려와 더럽혀져 있다.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 원형보존 사례로 포르투갈과 독일의 문화재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사실과 다르다. 댐 건설을 포기하고 암각화를 지켜낸 포즈코아는 반구대암각화와 상황이 전혀 다른 예로 부적절한 근거다. 포즈코아는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암각화가 발견됐기 때문에 수몰을 면할 수 있었다. 지난 1965년 사연댐을 건설할 때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다면 당시에 얼마든지 댐 위치 변경이나 기타 논의를 통해 반구대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도록 조치 할 수 있었다는 개연성을 외면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독일이 자랑하는 선사시대 문화유산인 엘베계곡도 그렇다. 독일은 이 곳에 철제 교량을 건설했다. 이 때문에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위배돼 해제되는 굴욕을 경험했다. 문제는 엘베계곡의 경우 계곡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었기에 이 곳에 교량이 들어선다는 것은 지정된 문화유산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였다. 등재 조건을 위반했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해제한 것인데 이를 지정도 안된 반구대암각화와 비교 선상에 놓는 것은 모순이다.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시대 이후의 각종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소실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교회와 성당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내부 소장품을 시민들이 보존해 현재 30개 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요한 사례가 독일 북부의 소도시 힐데스하임에 있다. 바로 성미하엘 성당의 천정그림이다. 이 그림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2차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이 그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힐데스하임 알게마이네 차이퉁 신문의 라이하트 편집국장은 대한민국 울산광역시에서 찾아온 취재진에게 "세계대전 당시 훼손이 우려돼 지역민들이 천정화를 분리해 집에서 보관했다. 그 후 전쟁이 끝난 뒤 이를 다시 맞춰 지금의 천정화를 보존할 수 있었다"며 "폭격과 성당 보수공사 등으로 원형이 사라졌지만 힐데스하임 시민들의 서명운동으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확정된 이후 이 곳을 보다 잘 관리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천장벽화의 원형훼손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주위환경을 최적화 시키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을 보다 잘 관리하는 일"이라며 "귀중한 문화재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공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유산 자체가 아닌 주변 환경의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는 공사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반구대암각화 보존의 핵심은 분명해 진다. 큰 비 오면 물에 잠기고 부유물의 증가에 훼손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반구대암각화의 당면 과제는 보존이다. 보존이 선행될 때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있다. 맑은물 대책이나 사연댐을 부숴야 한다는 이야기도 결국은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려는 의지의 방법론이다. 하지만 중구난방은 위험하다. 본질과 관계없는 이야기나 사실이 왜곡된 주장은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맑은물 대책은 하나의 방안이지만 이 역시 큰 비가 오면 대책이 없다. 사연댐을 없애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태풍 차바 때처럼 상류에 큰 비가 내리면 사연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댐이 없다면 태화강의 범람은 물론 하류의 홍수피해는 상상만해도 아찔해 진다. 이런 고려 사항을 무시한채 구호나 선동으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참담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지금 반구대암각화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담긴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관람객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보다 객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사연댐을 부숴야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 수로를 만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공부하고 접근하는 것이 맞다. 지금의 열정으로 반구대암각화의 물길을 돌려 놓았다면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지금과 같은 부끄러운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저 문화재청이 주장하는 대로 따라 외치는 방식이 십수년을 되풀이해 온 결과가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부끄러운 광경이다.    

우리가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 핵심이 가치다. 반구대암각화는 지구상에 단 하나 뿐인 고래사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암각화다. 어디 그 뿐인가. 75종 200여점의 야생동물과 고래그림이 치솟고 움츠리고 품고 해체되는 다양한 모습으로 수 천 년을 이어왔다. 알타미라나 얄타, 포즈코아나 알타이지역의 수많은 암각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치를 가졌다.  반구대암각화를 처음 서양학계에 알린 독일 학자들은 현장 조사를 통해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대륙의 끝에서 다시 끝인 울산의 바위그림이 선사시대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놀라움 그 자체였다. 물속에 자맥질하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수 천 년 전 이곳에 문명을 만들고 대를 이어 간 선사인들의 삶의 흔적에서 가치를 찾았다는 말이다. 바로 이를 증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우리에겐 당장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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