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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집을 얻어놓고 주말마다 드나들던 때였다. 짬을 내지 못해 보름 만에 시골로 향했다. 땡볕 속의 작물이 걱정되어 집 뒤의 밭에 나가보니 가뭄이 들어 엉망이었다. 참외는 바짝 말랐고, 수박은 쩍쩍 갈라진 땅 위에 시든 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들통에 물을 가득 퍼서 축 처진 수박의 갈증부터 풀어 주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 손전등을 들고 다시 밭으로 나갔다. 시들었던 잎사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해진 것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유년기의 우리 집에는 수박 농사를 지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하우스 재배가 아닌 노지 재배가 주를 이루던 때였다. 수박과 참외 끝물을 따내고 나면 남아 있는 줄기를 걷어내고 다음 해에 수박 심을 구덩이를 미리 팠다. 겨울을 나는 동안 파 놓은 구덩이에는 낙엽과 마른풀이 날아들었다. 쌓인 검불은 눈비에 젖고 썩어 거름이 되었다. 넓은 밭에 거름을 넉넉하게 주는 일이 만만치 않아 고심하던 부모님의 지혜였다.

이른 봄이 되면 파 놓았던 구덩이에 분뇨와 함께 썩힌 거름을 조금씩 묻고 수박씨를 심었다. 씨앗이 발아하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구덩이에 작은 비닐을 덮었다. 싹이 나고 줄기가 뻗기 시작하면 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 잔가지를 쳐 주었다. 가뭄이 들면 물을 주고, 장마로 인해 벌이 날지 않으면 수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혀 주는 인공가루받이를 했다. 수박 농사는 풀을 매고 수박이 흔들리지 않게 풀띠를 만들어 받쳐 주는 일까지 손이 많이 가는 농사였다. 잘 익은 수박을 수확할 때까지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 형제들은 학교가 파하고 나면 곧장 수박밭으로 달려갔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도와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공가루받이를 하거나 곁순을 잘라 주는 일이었다.

"우리집은 왜 수박을 심을까. 일 하기 싫은데…"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생각은 잠시였다. 풀 많은 수박밭에서 일을 거들다 보면 모기에 물려 가렵기도 하고 싫증도 나서 투덜대기 일쑤였다. 가끔 곁순 대신 원줄기를 잘라 놓기도 하고, 수꽃의 화분花粉을 암술머리에 붓으로 옮기다 꽃을 상하게 할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실수가 잦은 우리를 야단치지 않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며 달래고 타이르셨다. 때를 맞추어 물과 거름을 주고, 순을 잘라 주고, 가루받이를 해 주어야만 튼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식물도 때에 맞게 가꾸어야 하듯이 사람도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고 어긋난 길을 걸었던 한 청년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생모와 헤어진 아이는 새어머니와도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아버지마저 바쁘다는 핑계로 등을 보이자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치다가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자 점점 더 비뚤어져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힘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군대를 다녀오면 좀 달라진 세상이 기다려 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제대 후에도 청년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성장 과정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추위와 싸우며 공원 벤치에서 잠들기 일쑤였다. 순하고 여리기만 했던 청년은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남의 집 담을 넘기 시작했고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청년의 생모는 자신에게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자식을 선택했다. 중국에서 시작한 사업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였지만 모든 것을 접고 돌아와 아들에게 정성을 쏟았다. 아이가 집을 나가면 몇 날 며칠을 찾아 나섰고 사고를 내면 마음을 다해 수습했다. 갖은 노력에도 아들은 쉽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했다. 아들이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어미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시기에 같이 있어 주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잡은 손을 다시 놓지 않겠다며 아들을 감싸 안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울고 웃었다.

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알지 못했던 청년은 애끊는 모정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몇 가지 기술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해 합격하기도 했다. 아낌없이 정성을 쏟은 생모의 사랑과 정성으로 청년은 지금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때를 놓쳐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기도 하고 더러는 무심해서 시기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때에 맞춰 어떤 일을 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나 역시 시기에 맞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게 아직도 서툴기만 하다. 작게는 옥상 텃밭의 채소에 물을 주거나 잔가지와 순을 치는 일부터 크게는 세상과 마주 서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때를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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