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내의 잠

                                임윤

골목길 양쪽으로 건어물과 고추방앗간 점포들이 이마를 맞댄
중앙시장 근처로 이사 온 지 사십년
폐암을 앓던 아버지가 십여 년 전 돌아가신 뒤에도
천장에는 빗물의 얼룩이 짙어갔다
사십 년 오르락내리락하던 당뇨가 심한 어머니
오래된 계단에 이젠 힘이 부치시나 보다
열흘간 입원했던 어머니가 퇴원하시던 날
아내는 다른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고 했다
창밖엔 벚꽃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시장 건물이 헐리고 큰 도로가 생겼어도
재래시장 근처를 떠나지 못했다
아내는 오래된 좁은 집에 이골이 났을 것이다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장롱 문짝이 떨어지고
벌레들이 수시로 출몰했다
열대야 오기 전에 이사 갈 집을 알아보라 했다
달포 동안 손가락 꼽으며 계산하던 아내
당분간 이사를 포기하겠단다
아무리 계산해도 터무니없는 아파트 값과
은행 이자가 감당키 힘든 무게가 되는가 보다
어버이날이라며 찾아온 만삭인 딸애가 되돌아간 뒤
적금이라도 타면 생각해보자며 쓰러지듯 잠이 든 아내
'ㄹ' 자로 웅크린 아내의 홀쭉한 뱃속에서 빠져나간 건 무얼까
까닭 없이 심란하게 황사가 덮친 날이었다


△임 윤: 경북 의성 출생. 배재대학교에서 시를 공부함 2007년 '시평'으로 등단. 울산 작가회의 회장. 시집 '레닌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서리꽃은 왜 피는가'.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소란하여 평화로워 보이는 옥교동 중앙시장, 상가 사이사이 노점상이 즐비하게 있어 우호적인 가난이 도사리고 있는 재래시장의 배경은 누구나 손을 잡고 싶어지는 온기가 있는 곳이다. 둔탁한 목소리와 비뚤어진 간판들이 정겹고 질퍽한 낡은 점포 모퉁이가 반가운 곳이어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래서 '천장에는 빗물의 얼룩이' 있어도 쉽게 떠날 수 없었지만 북적임 속의 따뜻함이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부족한 듯 채워지는 가족애, 폐암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당뇨로 고생하는 노모를 걱정하는 부부의 효성이 고마워짐은 요즈음 보기 드문 시부모 봉양만은 아니다. 아내의 묵묵한 헌신이 그 이유가 되어 더욱 정겹게 읽을 수 있었다.

'벌레들이 수시로 출몰했다' 그러나 시인의 아내는 '시집올 때 가지고온 장롱 문짝이 떨어지고'가 더 마음을 아프게 했지 않았을까. 처음 그 장롱을 샀을 때의 핑크빛 꿈들이 빠져 나간 텅 빈 자신을 보았을 텐데 좁은 집에 커다란 품으로 불평을 재운다. 시인은 사십년 묵은 시간보다 순간적으로 더 무거운 것은 아내에게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대책 없는 자존심뿐, 그 자존심은 부실 공사처럼 은행이자 앞에 무너져야했다. 그래도 가난하나 달콤한 서정이 있고 아내에 대한 관찰자 입장의 투박한 남편의 깊은 속정이 뭉텅뭉텅 뚫고 나온다. 비록 그날은 '황사가  덮친 날이었다'고 시인은 어지러운 마음 한 쪽을 넌지시 일려주지만 왠지 온기가 느껴짐은 물질의 풍요보다 서로 보듬는 사랑이 묵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도순태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