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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히 호소합니다. 제발, 여러분의 말을 행동으로 보여 주세요…"
세상의 이슈를 찌른 소녀의 외침은 비장했다. 가슴에 한 방의 일침을 맞은 것처럼 찌릿했다. 하나둘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불교대학 연합회에서 주관하는 환경 세미나 자리였다.

어릴 때부터 앓은 폐 질환 때문에 평소에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직장과 봉사, 취미 활동으로 하는 소속된 단체에서 서슴없이 환경 담당을 맡아 꾸준히 소임을 다해 나가고 있다.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장바구니 갖기 캠페인을 꾸준히 벌이고 있고 올 초 새로 부임한 직장에서는 종이컵 안 쓰기 운동을 벌여 두 달여 만에 성과를 이루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불교대학은 아예 환경학교가 고정으로 개설돼 있어 학생 모두 의무적으로 실천 과정을 학습해 나가고 있다. 이번 세미나도 그 수업의 일환이었다. 주제를 요약하는 말미에 동영상 한 편이 방영되었다.

<6분 동안 세계를 침묵시킨 소녀>라는 부제를 단 이 영상은 화면 속 사람들이나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며 숨죽이게 했다. 1992년 브라질 리우 세계 환경 회의에서 어린이 환경 운동기구 대표로 나온 12살 캐나다 소녀 Seven suzuki의 단 6분에 걸친 연설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는 오늘날의 지구 환경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어린 소녀가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어른들은 침묵했다. 아니 세계가 침묵했다.

리우 환경 컨퍼런스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환경전문가들이 모여 대규모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 연단 위에서 어린 소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제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당당하게 외쳤다. 절박한 호소는 무책임한 어른 중 하나인 내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어 울컥했다.

소녀가 바라본 세상은 슬펐다. 북극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 위에 뼈만 앙상한 북극곰이 힘없이 어슬렁거렸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두 마리는 굶어 죽어 가는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선명한 물고기는 암에 걸려서 그렇다고 했다. 그 물고기는 유년 시절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밴쿠버 고향 강가에서 잡던 추억의 물고기가 아니었다. 죽어 버린 하천은 이제 다시는 건강한 물고기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이 돼 버렸다.

화학 물질이 떠다니는 오존층은 구멍이 뚫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막이 되어 버린 숲, 점점 파괴돼가는 정글과 열대 우림 앞에 망연자실했다.

점점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수많은 새와 동물은 소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사랑스러운 야생 동물과 함께 뒹굴며 살고 싶은 낙원을 꿈꾼다고 했다. 청정한 초원에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잠시 마른침을 삼켰다. 화면 속 무력한 어른들과 하나가 된 사실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이 연설이 발표된 지 어언 28년이나 지났다. 지구는 그 침묵 이후 어른들의 노력을 얼마나 느꼈을까? 하지만,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오히려 전무후무한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앞에 마스크 하나 달랑 쓴 채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구걸하고 있지 않은가?

비겁한 어른들께 일침을 가하는 소녀의 음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부끄러운 어른은 소녀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 행동한다. 출근길 가방 속에 시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챙긴다. 손수건도 몇 장 개어 넣었다. 퇴근 후 만난 친구가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신다기에 단호히 빼앗았다.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할 것이다. 넘쳐나도록 가지고도 여전히 탐욕을 버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뉘우친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킨다는 말이 있듯이 나 하나의 작은 실천이 주변에 큰 파도를 일으킬 것이라 믿는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지구이기를 염원해 본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이 연설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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