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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과 함께 구월 동시여행을 떠납니다. 2007년 실천문학사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은 안도현 시인의 첫 동시집이라 그 의미가 큽니다. 우연히 들여다봤을 나무 잎사귀 뒤쪽. 시인은 이내 그곳은 '마을'이라 명명하며 온갖 생명들로 북적이게 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푸른 마을, 지구에서 가장 착한 마을,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그 마을에 들어섭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단다/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에는/달팽이가 기어다니는 길이 있고/(과속단속하는 교통경찰은 없고)/달팽이가 아침마다 물 긷는 우물이 있고/그 우물가에는 아기 무당벌레의/기저귀를 빠는 엄마 무당벌레가 있고/(일회용 기저귀를 쓰지 않고)/나비가 소나기를 피해 잠깐 쉬어가는/간이 휴게소가 있단다/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에는/학교도 안 가고 자기 집 베란다에서/하루 종일 그네를 타고 노는 거미가 살고/(거미는 물론 과외를 받은 적 없고)/형제끼리 다투다가 회초리 맞고/종아리 빨갛게 된 고추잠자리가 살고/ 밤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험상궂은 불나방 아저씨가 살고/(아저씬 밤늦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는 않아)/그 옆집에는 땅을 자로 재며 기어다니는/자벌레 영감이 혼자 산단다/(자식 없고 가난해도 모두들 존경하지)/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부분

잘방잘방 물 긷는 달팽이 새댁 앞치마는 얼마만큼 예쁠까요? 그네를 타고 노는 거미 아이의 콧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존경받는 자벌레 영감님 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들러야겠지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연약하기 그지없는 잎사귀 한 장에 얹힌 생명들. 그럼에도 저토록 질서정연하고 평화로 단단히 뭉칠 수 있는 건 시인의 힘입니다. 저어기 '가을이발관'이 손짓하네요.

가을이발관에서 나무들이 일 년 만에 머리를 깎고 있다//바람은 가위를 들고 와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자른다//머리카락이 낙엽처럼 차곡차곡 바닥에 쌓인다//그 다음에는 양털구름이 스윽, 목덜미에 흰 거품을 바르고 지나간다//그러자 파란 하늘이 면도사가 되어 말끔하게 면도를 마무리 한다//차르르르 쏟아지는 맑은 햇살로 머리를 감으면 이발은 끝난다  
 ―'가을이발관' 전문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제 연배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렸을 이발관의 추억을 소환하는 동시입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관문성에도 이발관이 있었습니다. 오촌 당숙 만식이 아재가 운영하던 이발관이었는데, 거인 느티나무 아래 이발관 의자 하나를 내놓은 게 전부였습니다. 읍내 어떤 이발관도 따라올 수 없는 꿈의 이발관이었습니다. 동시와 떠나는 여행이 물리지 않은 건 이런 명작들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안도현이어서가 아니라, 동시가 좋아 떠나는 여행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안도현 시인도 만나고, 고래도 만나고, 연어들의 여행에도 끼여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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