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공단 조성과 함께 지어진 당시로선 최신 시설 갖춘 별천지
[+영상] 공단 조성과 함께 지어진 당시로선 최신 시설 갖춘 별천지
  • 전우수 기자
  • 2020.09.1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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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울산] 4. 울산의 사택
기업체 간부·사무직 직원들 대부분 거주
수세식 화장실·보일러 등 파격 생활 환경
생활양식·언어·교육 등 토박이들과 달라

경제적 이유 도로 접한 산지에 주로 건립
사택 중심 상가·주택가 형성 중심지 부상
시대 변화 따라 위축 갈수록 운영 감소세
1967년 울산의 첫 사원사택인 남구 야음동 한국석유공업 사택 전경.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1967년 울산의 첫 사원사택인 남구 야음동 한국석유공업 사택 전경.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사택은 울산의 공업사와 맥을 함께 한다. 울산은 공단 조성과 함께 시작한 사택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독특한 사택문화를 낳았다.

공장을 조성하고 일자리를 찾아 울산을 찾았던 외지 출신 임직원들에게도 사택은 낯선 주거환경이었겠지만, 울산 토박이들에게 커다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도심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농업이나 어업을 기반으로 했던 작은 마을이었던 울산의 토박이들 눈에는 사택의 모든 것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신작로가 생기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초가마을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옥집들이 길게 들어섰다. 직장 유니폼을 입은 말쑥한 차림의 사람들이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 길에 오르는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사택 울타리를 넘어 학교에서 만나는 서울말씨의 하얀 피부의 아이들은 똑똑했다. 교내 성적에서도 항상 선두 자리를 꿰찼다. 그 옛날 토박이들 눈에 비친 사택사람들은 먼 나라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초대 받아 발을 들인 사택 내부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당시로서는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보일러는 기본이었고, 집안에 세면기와 변기를 갖춘 수세식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으니 가히 눈이 휘둥그레질만했다.

사택은 분명 울산 땅에 있으면서도 울산이 아닌 선망의 땅이자 이질감이 함께 하는 곳이기도 했다.
초창기 울산공단 건설이 일단락된 1978년 모 중앙 일간지에 실린 기사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울산지역 75개 업체 가운데 사택을 가진 31개 회사의 사택 수는 1,033채로 6,600가구 분, 허가 상 건립목적은 대부분 종업원 복지향상을 위한 사택으로 돼 있지만 임원 간부급과 사무직 사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기능직 근로자들은 일부 중견급만이 입주하고 있는 실정, H화학, J공장, K회사 등의 간부사택은 산속 녹지에 세워진 별천지의 호화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전입주민과 토박이 주민들 간엔 생활양식, 생활정도, 언어, 교육정도 등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연히 거리감이 생겨 초등학교 어린이들 까지도 '사택에 사는 애들'은 따로 논다, 학교에 대한 평가도 이젠 학구 내에 큰 회사 사택이 들어 있나 없냐에 따라 정해지는 형편이다"

방치되고 있는 한국석유공업 사택을 둘러 보는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전우수 기자.
방치되고 있는 한국석유공업 사택을 둘러 보는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전우수 기자.

# 울산사택 원조 한국석유공업 사택 보존가치 높아
울산의 사택의 흔적과 역사를 더듬기 위해 한삼건 교수와 가장 먼저 찾은 울산 사택 현장은 울산시 남구 야음동 산252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업(주) 사택.

현존하는 울산의 사택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964년 12월 설립된 한국석유공업은 직원들의 출퇴근과 유사시 긴급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공장이 위치한 여천동과 인접한 지금의 야음동에 1967년 9월 30일 사택을 조성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 두 집 정도 사람이 머물렀지만 지금은 전체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노후화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택이라는 점과 야음동 일원의 사택 단지화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서구의 연립형 주택을 사택에 적용한 사례라는 점도 주목된다.

현재 남아 있는 10개의 건물은 1동을 제외하고는 2세대가 1동의 건물에 들어선 연립형 단층 건물 형태를 띠고 있다. 박공(朴工)형 맞배지붕 형식의 이 건물은 북쪽 아래에서 남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2줄로 나란히 개설했고, 그 사이와 옆에 단을 만들어 연립 주택을 배치했다.

한 교수는 "한국석유공업 사택은 울산의 사택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역사성 만큼이나 보존가치를 갖고 있다. 건축의 실내·외가 모두 초기 모습 그대로이어서 울산의 공업역사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담겼다. 옛날 울산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분들의 사택문화 체험담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체험의 현장으로 보존 관리돼야 한다. 울산지역민이나 관광객들에게나 모두에게 옛 울산 공업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억의 장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사택사는 애들' 토박이와 거리감도
한 교수는 울산에 많은 사택단지가 필요했던 이유는 울산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될 수 있게 한 입지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울산개발 초창기 대규모 공단이 입지한 지금의 남구, 동구, 북구, 울주군 온산 일대 바닷가는 드문드문 마을이 있을 뿐 허허벌판이어서 새로 들어서는 각 공장 임직원들을 위한 주택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때문에 각 기업이 스스로 공장도 짓고 종업원을 위한 숙소도 마련해야만 했다.

울산의 사택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경제적인가에 있었다.
사택 조성의 필요조건 중에는 공장과 사택 간에 출퇴근 시간의 절약과 도로의 설치여부가 관건이었고 가능한 값싼 사택 부지가 사택 조성의 기준이 됐다.

울산의 사택단지 지도.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 제공* 일부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사택도 있습니다.
울산의 사택단지 지도.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 제공
* 지도 내 일부 사택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택 조성지는 주로 도로를 낀 산지가 유력한 후보지가 됐다.
울산공단에 인접한 울산 남구지역의 사택은 주로 야음동, 옥동, 무거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구 매암동과 무거동을 잇는 울산 산업도로가 개설돼 있어서 최고 인기 사택부지로 꼽혔다. 직장으로 출근, 고향으로의 이동이 퍽이나 용이했던 때문이다. 이후 이 같은 용이한 교통 입지조건은 부지 매각 등에서 회사에 엄청난 재산적 가치를 높여주는 효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산업도로를 중심으로 한국석유공업(주)은 선암저수지 바로 옆에 사택을 조성했고, 영남화학(주)는 지금의 울산세관 자리인 울산특별건설국 바로 앞에 사택단지를 조성했다. 이어 1970년대 동서석유화학(주), 태광산업(주), 한국알콜(주), 한국포리올(주) 사택들도 잇따라 이 일대에 사택을 조성한다. 동양나이론이 옥동 일원 옛 울주군청사 인근의 한 구릉에 사택을 조성했고, 대한유화(주), 럭키(주), 쌍용정유(주), 이수화학(주) 등의 사택들도 산업도로를 중심으로 인근에 속속 들어섰다.

하지만 야음동 일대가 협소해 애초부터 다른 곳을 물색한 회사도 있다. 1960년대 중반 한국비료(주)는 향후 조성될 명촌교를 염두에 두고 중구 약사동 일원의 값싸고 넓은 구릉을 부지로 택했다.

사택은 도심의 중심지로의 발단이 됐다. 사택을 중심으로 상가와 또 다른 주택가가 형성되면서 사택은 자연스럽게 해당 지역의 중심가로 부각됐다. 이렇듯 울산공단 입주 회사들의 사택이 남구의 도심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사택은 동구와 북구의 도심개발에 근간을 제공한다.

또 온산공단의 고려아연(주), 동해펄프(주), LS-Nikko 동제련(주)도 인근 덕신리에 사택을 조성하면서 덕신리 일대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주거지가 형성된 배경이 되는 등 사택은 도시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울산 최대규모 사원사택이었던 남구 야음동 영남화학 사택의 옛 부지에 들어선 아파트단지와 학교.
울산 최대규모 사원사택이었던 남구 야음동 영남화학 사택의 옛 부지에 들어선 아파트단지와 학교.

# 도시개발 근간으로 작용
하지만 시대와 세대가 변하고 사원들의 삶의 형태도 바뀌면서 기존의 사택으로는 사원들의 욕구를 제대로 수용하기 어려워진다.

1960년대 단층형 주택들은 대형화 된 가구와 생활가전을 집안으로 들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출입구가 좁고 내부 공간의 배치도 비효율적이었다. 사택이 인근지역의 주택에 비해 시대에 뒤떨어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면서 점차 사택에 거주하고자 하는 사원들의 수가 줄고 급기야 빈집이 발생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나타났다.

토박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사택은 그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시설로 전락되면서 점차 축소되고 있다.
한 때 주거문화를 주도하고 선도했던 울산의 사택은 지역의 주택사정이 좋아지면서 갈수록 위축 되고 있다.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사택을 운영할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고, 넓었던 사택부지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고충아파트로 변모했거나 현재 진행형이다. 울산도시개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택의 시대가 몰락하고 있다.  전우수기자 jeu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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