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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어떻게 시인에게 올까요?
동시인들은 어떻게 시를 쓸까요?
"저는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이야기를 듣고 시를 주워요"
"대숲 걷다가 대나무가 불러주는 시 받아썼어요"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시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멋진 시를 쓰는 시인들은 끊임없이 노력했을 겁니다. 바람이, 구름이, 아이들의 말속에 숨은 시를 줍기 위해 온몸의 감각들을 깨우고 지냈을 겁니다.
오늘은 "사고뭉치든 장난꾸러기든 아이들의 마음이 곧 시다"고 말하는 김진숙 시인의 동시집 '오늘만 져 준다'를 꺼내 봅니다.
김진숙 시인은 2012년 창주문학상을 받아 동시 작가로 등단했고, 이 책은 첫 동시집입니다. 학원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작가의 시에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이 많이 담겼습니다.

# 사고뭉치

말썽꾸러기라고
친구들이 지어 준 내 별명

사고(思考)뭉치

기발한 생각이 한가득이라고
한자 선생님이 지어 준 내 별명

이 시를 읽고 나면 사고뭉치라는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쁠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누가 저한테 사고뭉치라고 해도 '그래 나 사고뭉치 맞아. 난 생각이 기발하지'하며 웃을 수 있을 듯합니다.

# 잔소리 대신

할머니가 큰 소리로
-니도 좀 쉬어라

나 보고 하는 소린가 해서
뜨끔하는데
TV를 끄셨다

뜨끈뜨끈한 내 게임기한테
미안해
-니도 좀 쉬어라

이 시를 읽으니 왠지 어린이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니도 좀 쉬어라"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하는 말에 아이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뜨끈뜨끈해진 자신의 게임기를 끕니다. 할머니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아이가 게임을 그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할머니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저도 요즘 코로나19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를 보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습니다. 뜨끈해진 휴대전화한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내일부터는 휴대전화와 노는 시간을 좀 줄여야겠습니다.

# 이런 날도 있네

학교 가다 깨진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지
시비 거는 짝지랑 말다툼하다 혼났지
거기다가 급식판을 쏟아 밥도 못 먹었지
뭐 이런 날이 다 있노 했더니
-이거 너 가질래?
지영이가 샤프를 주겠다네
그것도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걸

냉큼 받았지

최봄 아동문학가
최봄 아동문학가

시 속의 이런 날은 어떤 날일까요?
깨진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고, 시비를 먼저 건 짝지랑 말다툼하다 혼나고, 급식 판까지 쏟아 밥도 못 먹은 날. 이 시의 4행까지는 무엇하나 되는 일 없는, 재수 옴 붙은 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재수 없는 일로만 끝나면 재미가 없겠지요.
마지막에 반전의 묘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샤프를 친구한테 받게 되니까요.
저도 무엇하나 즐거운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마다, 제 일상에서 숨은 반전의 재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고마운 순간, 감사한 순간, 사랑한 순간, 그런 순간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충분히 "이런 날도 있네!" 하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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