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빨래
  • 송은숙
  • 2020.09.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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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송은숙 시인

집안일 중에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빨래라고 대답하겠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게 아니냐고?  대부분 세탁기의 일이지만 수건이나 행주, 속옷 같은 삶아야 하는 빨래부터 물 빠짐이 있거나 블라우스 같이 천이 상하기 쉬운 옷은 아직 손빨래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빨래는 이불 호청이나 청바지 같은 게 아니라 손안에 잡히는 부피가 작은 걸 말한다. 

물론 세탁기가 없을 때야 빨래는 큰 일감 중 하나였다. 일이 힘드니 돈을 주고 품을 사기도 했다. 드가의 <세탁소 여직공들>이란 그림을 보면 힘주어 다림질하는 여직공 옆에 술병을 손에 쥐고 하품을 하는 여인이 있다. 하루 종일 녹초가 되도록 일해야 하는 세탁부들은 힘듦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고된 노동의 피로가 한눈에 느껴진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대표작인 <다림질하는 여인>에도 눈이 움푹 꺼진 여인이 다림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림질을 하는 게 아니라 도장을 찍는 듯 힘주어 누르는 자세는, 가난이라는 낙인이 찍힌 삶의 무게가 청색이 주는 우울한 분위기로 무겁게 배어나온다. 품이 아니라도 빨래는 힘든 집안일 중 하나였다. 식구가 많으니 빨랫감도 만만치 않았고 무명옷에 밴 얼룩은 쉽게 지지 않아 나무 방망이로 탕탕 두드려야 했다. 다행히 세탁기가 나오면서 이런 고역에선 어느 정도 해방이 된 셈이다. 그러니 집안일에 젬병인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 빨래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빨래는 빨래판 앞에 자리 잡으면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서 할 수 있고, 빨래를 문지르는 비교적 단순한 동작을 반복한다. 그래서 여러 집안일 중에서도 고요히 사색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디오를 듣거나 방탄소년단의 신곡인 <다이너마이트>를 감상할 수도 있다. 따뜻한 물에 푹 담갔다 꺼낸 수건에 비누칠을 해서 빨래판에 척척 치대고 문지르다 보면 비누 거품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막혔던 생각이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다. 빨래가 깨끗해지는 것처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 일종의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예전엔 빨래판에 방망이를 두드려 빨았으니 뭔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얄미운 시누나 속 썩이는 남편에 대한 화풀이 같은 것. 그 시절엔 빨래터가 마을 우물이나 도랑 같은 데 있어서 빨래를 하는 날은 바깥바람을 쐬는 날이기도 했다. 거기에 아낙들이 모여 온갖 소식을 주고받으니 빨래터는 뉴스의 원천이자 맺힌 것을 푸는 심리상담소의 역할을 한 셈이다. 

우리집의 빨래 담당은 세 살 터울인 작은언니였는데 언니는 종종 화나는 일이 있으면 빨랫감을 들고 냇가로 갔다. 빨랫감이 부족하면 좀 더 입어도 될 성 싶은 옷까지 챙겨들고 갔다. 그리고 빨래를 방망이로 퍽퍽 치고 주무르다 오래오래 헹구었다. 비눗물은 빨랫돌 근처에서 우윳빛으로 잠시 머물다 이내 반짝거리며 흐르는 냇물을 따라 사라졌다.

흐르는 물을 오래 들여다보면 물을 따라 내가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언니는 두드림과 헹굼과 흘려보냄을 통해 마음이 좀 풀렸는지 돌아올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빨래가 깨끗해지듯 마음이 비워지고 가벼워지는 것, 이게 빨래의 미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빨래의 백미는 빨랫줄에 빨래를 너는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빨래가 마르는 모습이다. 빨래를 말리기에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봄엔 흙먼지가 날리고, 여름은 덥지만 습기가 높아 눅눅하다. 겨울엔 빨래도 얼어붙어 뻣뻣해지기 때문에 잘못 걷다가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가을은 청명하고 쾌적해서 빨래도 보송보송 잘 마른다. 맑고 따뜻한 가을볕 아래 다 마른 빨래가 가볍게 흔들리는 것. 바지랑대 끝에 앉은 고추잠자리. 파란 하늘과 하얀 새털구름. 마당에 빨간 고추를 말리는 멍석이라도 놓여 있으면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다. 

옥상에서 말리는 빨래도 좋다. 이럴 땐 하얀 기저귀 빨래가 제격이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천이 내걸린 모습. 그 뚜렷한 색채의 대비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늦둥이 셋째아이 낳고 흔한 종이기저귀 마다하고/ 손빨래를 고집한 것은/ 맨손에 똥오줌 묻히며 빨아 푹푹 삶아댄 것은/ 내가 대단한 환경론자여서가 아니라/ 천기저귀 하얗게 마르는 거 보고 싶었기 때문/ 산들산들 바람 부는 옥상에서/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게 바랜 기저귀/ 펄럭이는 거 보고 싶었기 때문"

오래 전에 쓴 '기저귀, 펄럭이는'이란 시의 한 부분인데, 정말, 아이들이 어릴 때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가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하얀 천기저귀를 보며 한참을 볕바라기를 하다 내려오곤 했다. 주택가의 옥상은 사방이 탁 트여 풍경을 보는 눈도 즐거웠다. 힘든 일을 한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보상 같은 휴식.

이젠 미세먼지가 많아져서인지 옥상에 빨래를 너는 집이 드물다. 아파트가 늘어가면서 옥상이 있는 집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우리 때 혼수품은 세탁기도 아닌 짤순이라 불리던 탈수기였는데, 이젠 세탁기 말고도 건조기가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는 빨래를 대신 개주고 정리해주는 기계나 로봇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빨래라는 것이 단순한 노동을 넘어 삶의 한 순간을 위로하거나 윤택하고 빛나게 해주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모처럼 볕 좋은 날, 옥상이 아닌 베란다에 빨래를 널면서 낡은 테이프를 돌리듯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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