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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권력이나 외압으로부터 의견을 제시할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매우 중대하고, 큰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에만 너무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민주적 학교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무엇을 판단할 권리에 대해서도 고민 해보아야 한다.
 
로크는 '관용에 관한 서한'에서 의견이란 것을 사변적 의견과 실제적 의견으로 나누었다. 로크가 말한 사변적 의견은 순수 이성에 의한 의견을 뜻하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떤 이론쯤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변적 의견에는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나는 너와 다르게 생각한다'는 식의 객관적 구조가 성립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말한 '실제적 의견'이다. 실제적 의견은 행동에 관한 의견이며, 어떤 실천에 관한 의견이다. 그래서 실제적 의견은 '너는 그렇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해' 식의 객관적 구조가 형성되기 매우 어렵다. 이는 실제적 의견이 행동이나 실천을 논리적으로 가정함으로서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적 의견은 행위의 당위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그러하기에 이것은 의견을 내는 본인의 행위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실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실제적 의견은 누군가에게 의견을 판단하는 부분에서 반드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특정 종교를 믿고 있는 교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가 확고할 것이고 그의 생활은 특정 종교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학생들 앞에서 너무나 확고하고도 당연하게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가 옳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미 종교에 대한 지각이 있거나, 종교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교사의 의견에 비판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교사의 의견을 거름망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은 교사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게 되는 위험한 결과를 촉발시키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학생이 교사가 말한 실제적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서 어떤 특정 종교를 믿었다고 가정했을 때, 학생에게 종교에 대한 비판 능력이 없다거나, 특정 종교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교사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고만 친다면 특정 종교를 믿게 된 판단의 책임을 학생에게만 너무 과하게 떠넘겨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흔히, 자신의 판단(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는 이것이 적용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그것이 교육 현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교사의 권위는 미성숙한 아동들에게는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권위 있는 교사의 말 한 마디에 학생들의 행동이 바뀌고, 생활 습관이 조절되고, 심지어 어떤 것의 실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의 예시는 교사의 권위에 의해서 학생이 특정 종교를 받아 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은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교사로부터 침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실제적 의견을 제시할 때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적 의견은 어떤 외부의 요인도 거부되었을 때, 오롯이 판단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게 된다. 
 
판단할 권리가 보장 되지 않은 예시는 꼭 권위나 권력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비교적 과거에 비해 선택의 기회가 많고, 판단해야 할 일도 많은 요즘에는 동료 교사간의 협의나 교사들 간의 의견 교류로부터 선택의 자유 또는 판단의 권리가 침해 받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앞서 말한 실제적 의견 제시에서 외부 요소에 대한 고려 없음, 외부의 폭력적, 기만적 요소가 판단할 권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의 없음으로 인해 힘 있는 동료 교사 몇 몇에 의해 협의회나 의견 교류의 장이 좌지우지 되어 피해를 입고 있는 교사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적 의견에 있어서 외부의 요소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어떻게 하자'라는 것을 제시했을 때, 그것에 대한 비판과 경험적 수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이 목소리를 크게 높인다거나, 자신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준다거나 또는 공격적인 분위기로 상대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등 흔히 보복을 통해서 자신의 실제적 의견을 관철시켜 동료들에게 판단할 권리를 침해하고, 동료들의 행위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실제적 의견을 잘못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간혹,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뜻을 몰라줬기 때문에 감정이 격앙되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외부적 환경을 차단하지 않은 그의 억울함은 판단할 권리를 침해 받은 타인의 억울함 보다 더 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야말로 실제적 의견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 아닌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은 협박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는 협잡꾼들일 것이다. 
 
민주적 학교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존중의 민주 원리를 실천하는 것부터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외부의 요소나 환경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인간 존중에 대한 침해를 받았음을 알리고, 그것으로 인해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통보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런 외부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함께 논의할 수 없음을 정중히 알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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