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석이 코앞이다.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 앞에 온 나라가 손사래를 친다. 처음 경험하는 명절이다. 그러고보니 올 초부터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과 매일같이 마주하며 살고 있다. 요즘 정치도 그렇다. 정의와 공정을 외친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조국으로 시작된 특권과 반칙, 세습과 특혜의 적폐가 추미애 장관에 이르자 안하무인으로 돌변했다. 부끄러움이 실종 된지는 오래 전이지만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민낯과 매일 마주하는 일은 정말 고통스럽다.  

말이 나온 김에 안하무인격인 정치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첫째가 김홍걸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 의원을 두고 정의당에서 논평을 냈다. '호부견자(虎父犬子)' 아비는 범인데 자식은 영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의당이 고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을 두고 낸  논평 치고는 참 거칠다 싶지만 최근의 불공정과 반칙에 대한 반감이 함의된 느낌이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부친과는 달리 부동산투기에 모든 열정을 다한 김홍걸 의원을 두고 정치권은 등을 돌렸다. 

김홍걸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부친의 후광을 바탕으로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호남민심을 다독인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이었다. 영광은 잠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홍걸 의원의 탁월한 재테크 신공이 까발려졌다. 부동산 재산신고 누락 및 투기 의혹에 이어 모르쇠 전략과 일관된 부인술로 민심을 잃었다. 결국 민주당도 그를 버렸다.

김홍걸 의원의 제명을 주도한 이낙연 대표를 두고 언론은 읍참마속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시킨 이낙연의 손에 아들인 김홍걸이 잘려나간 꼴이다. 아프게 보이는 대목이지만 사실은 눈속임이다. 제명이라는 절차적 공정성을 외쳤지만 김홍걸은 여전히 무소속 국회의원이다. 비례대표에게 의원직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절차가 제명이다. 제명은 됐지만 그는 결국 민주당과 한 몸이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이들의 비리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없이 반복된 일이지만 21대에 이르도록 국회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국회에서 집권당으로 우뚝 선 민주당이 제대로 코너에 몰렸다.

출발부터 불길했다. 총선이 끝나기도 전에 비례대표 양정숙 의원의 재산 문제가 불거졌다. 양 의원은 서울 강남 등에 부동산 5채를 보유하는 과정에서 가족명의를 도용하고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언론에 까발려졌다. 민주당은 선거 전에 이를 알고 진상조사까지 벌였지만 덮어뒀다가 총선이 끝난 뒤 제명하는 꼼수를 택했다. 양 의원은 지금도 정의와 공정을 문구로 걸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표로 선택을 받는 지역구 의원들과 달리 비례대표 의원은 정당이 결정한 명부에 따라 출마를 하고 정당의 득표율에 의해 당선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다보니 소속 정당이 제명 조치를 내려서 더 이상 정당소속 의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은 거셀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당적만 없어질 뿐 의원직은 유지돼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는 평이 나온다. 비례대표의 경우 스스로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당이 제명 등으로 출당 조치를 취하면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여기서 정당의 책임론이 나온다. 도덕성 논란이 있는 의원들을 공천한 기준이 무엇인지 소속정당은 유권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부분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해당 국회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도리다. 공정과 정의는 이 장면에서 나올 수 있는 단어들이다. 날만 새면 공정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외투처럼 걸치고 다니는 자들이 밤이면 모두 편법과 반칙으로 부어라 마셔라로 눈알이 벌겋다. 이런 국회에 절차적 정의나 공정을 외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비례대표 이야기를 하면 윤미향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최근 검찰로부터 준사기죄로 기소됐다. 일본군 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다. 윤 의원의 사법적 판단은 다음 달 시작되는 재판으로 가려질 것이지만 이미 그는 피해자 할머니와 상당수의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치명상을 입었다. 아니다. 윤미향 의원의 도덕적 치명상이 아니라 정의연을 향한 국민들의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검찰은 윤 의원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가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요건인 학예사를 두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등록하는 수법으로 서울시 등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또 윤 의원이 관할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기부금품을 개인계좌로 모금하고, 법인계좌나 개인계좌로 모금한 돈을 임의로 쓴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특히 검찰은 윤 의원이 중증 치매를 앓던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총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했다며 준사기 혐의를 적용했으나, 윤 의원은 이를 부인하고 있어 향후 법정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정의연에서 오랜시간 활동해온 윤미향씨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운 경력 때문이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할머니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윤미향씨에게 이용당했다고 폭로했다. 이른바 사기·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 널부러져 있다. 검찰에 기소된 혐의만 8개다. 

최근에는 더 참담한 폭로가 이어졌다. 참여연대 출신 회계사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통장에 매달 들어왔던 정부·지자체 지원금이 "지급되는 족족 누군가에 의해 '현금'으로 출금됐다"며 그 금액이 4억원가량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또 "누가 빼갔을까요?"라며 "해당 은행 성산동 지점 가서 창구 직원에게 물어보면 금방 대답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길 할머니는 2015년부터 치매 관련 신경과 약을 복용해왔고, 검찰도 길 할머니의 병력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의기억연대는 지난주 정기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문제해결에 방해만 놓은 세력들이 한목소리로 운동의 역사를 훼손하고 식민지의 족쇄로 다시 속박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피해 생존자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검찰에서 무혐의로 종결된 사안, 당사자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해명조차 불가능한 사안을 끄집어내어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추측해 고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착각하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정의연에 대한 폭로나 윤미향 의원에 대한 의혹은 정의연이 벌여온 운동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의 족쇄로 속박하려 한다는 말은 참담한 자기방어다. 국민들이 들여다보는 부분은 정의연의 위안부 운동의 올곧은 역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부도덕성과 거짓, 그리고 의혹이 터져 나온 이후의 행동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려내고 자기반성으로 거듭나야 정의연의 올곧은 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지금처럼 특정인과 정의연을 동일시하고 위안부 할머니를 방패로 삼는다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비례대표가 비리대표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정치는 불행하다. 사법정의를 외치고 검찰개혁의 깃발을 흔드는 법무부장관이 자식의 군생활 당시 휴가문제로 죄충우돌하는 상황은 참담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때까지 무사히 정시에 부대에 복귀했는지를 마음 졸이며 기다린 경험이 있다. 보편적 진실을 뭉개고 국민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면 어쩌자는 이야긴가. 특권과 권위의식이 가득해 보인다.

조국으로 시작돼 추미애로 정점에 이른 우리 사회의 특권의식을 보고 있노라면 죄와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연상된다. 자의적 초인주의, 극단적 공리주의에 빠진 법학도의 궤변이 오늘의 시대에도 경구가 된다는 것은 아프지만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못하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수오지심의 경구까지 잊고 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