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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엔 내려오지 말고 집에서 푹 쉬그래이. 걱정 마라, 우린 개안타~."

울산 동구에 사는 오명수 씨(68)는 올해 추석 때 강원도에 있는 딸 내외에게 고향에 내려오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최근 임신한 딸이 귀성길에 나섰다가 혹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노출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에 1년에 몇 번이나 볼까하는 딸을 명절에도 못 만난다는 것에 아쉬움이 컸지만, 전화통화로 괜찮다는 말만 연신 내뱉으며 올해 추석은 각자 집에서 보낼 것을 약속했다.

코로나19 여파 속에 추석을 맞게 되면서 예년과 다른 명절 풍속도가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추석연휴 지역간 이동이 늘면서 명절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재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들이 앞장서서 추석 고향 방문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인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해 가급적 고향과 친지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하고, 추석 명절 인구가 밀집할 우려가 있는 시설에서 집중적으로 방역 대책을 추진한다.

한국도로공사는 '추석 명절 대비 휴게소 방역 강화 대책'을 시행키로 했다. 이번 대책에 따라 연휴 기간인 29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총 6일간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 실내 매장에서는 취식이 금지되고 포장만 가능하다. 실내 매장에 사람이 밀집될 경우 감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추석 연휴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사람을 위한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인 'e하늘 장사정보 시스템'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추모관을 꾸밀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묘 기능도 있어 이미지를 만들고 가족들과 소셜미디어로 공유할 수 있다. 산림조합이나 농협, 지자체 등에서 제공하는 벌초 대행 서비스도 미리 신청하면 이용할 수 있다.

울산시도 명절 이동 최소화를 위한 '이번 명절 집에서 쉬기' 동참 온라인 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 모든 시민이 추석 이동 자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울산시는 추석 연휴 코로나19 특별 방역 대책을 추진해 성묘·봉안 시설에 대한 비대면이나 분산 방문을 유도하고, 노인 요양 시설이나 의료 기관에 비접촉 면회를 하도록 한다.

연휴 기간 중 가족·친지 단위 방문이 예상되는 고위험 시설과 다중 이용 시설 22종 3,116곳에 대해서는 방역 수칙 준수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전통시장 48곳, 유통 매장 24곳은 정기 소독하고, 마스크 착용 여부를 확인하는 등 방역 관리를 강화한다.

KTX울산역, 태화강역, 호계역에는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시내버스 한 차례 운행에 한 차례 소독, 마스크 착용 안내 등을 지속한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자 사람들도 스스로 추석 이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출향민이 거주하는 수도권 주민 대다수가 올 추석 '고향을 방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에서는 지난 19~0일 서울시민 추석 연휴 계획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67.9%는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방문 계획이 있는 시민은 전체 응답자의 28.1%였다.

경기도 역시 지난 19일 18세 이상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79%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고향방문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이에 따라 추석명절 익숙한 풍경이었던 '민족 대이동'을 이번엔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변화된 명절 분위기에 따라 유통업계 추석 대목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유통업계는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추석 선물세트 비중을 예년과 비교해 30% 이상 늘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추석 대목'이 오프라인에서 사라질 것에 대비한 것이다.

실제 지난 26일 방문한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썩 좋지 못했다. 기대했던 대목이지만 매출이 예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건어물 동의 한 상인은 "작년 이맘 때의 반도 못 팔았다"며 "올해 추석은 코로나 때문에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장사가 안 될 줄은 몰랐다"며 하소연했다. 울산 전통시장인 태화시장도 손님이 평일 수준으로 예년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반면 코로나19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는 전통시장도 나타났다. 동구 남목전통시장 상인회는 지난 23일부터 오는 30일까지 비대면 장보기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이 서비스는 남목시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정육, 과일, 건어물 등 선물 목록에서 하나를 선택한 뒤 원하는 시간에 차를 운전해 시장에 가서 선물을 받아 가는 방식이다. 일종의 '드라이브 스루 장보기'다.

남목시장은 올해 정부 지원 시장에 선정돼 축제를 준비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열지 못했고, 축제 비용의 용도를 고민하다 코로나19로 장보기를 꺼리는 소비자를 위해 비대면 장보기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런 와중 강원도와 제주도 등 주요 관광지에 예약이 여름 성수기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눈총을 사고 있다. 한쪽에서는 '방역'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귀향 대신 관광·쇼핑을 떠나는 '청개구리족'이 원인이다.

이에 정부는 방역 대책으로 추석 연휴인 이달 20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주요 관광지에 방역 요원 3,000여 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조홍래기자 starwars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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