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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울산은 물산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처용의 고장이다. 울산에는 처용암이 있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중 '처용설화'에 헌강왕이 동해 용왕을 위해 지어준 망해사가 있다. 
 
처용암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로 남구 황성동, 지금은 공해로 인해 마을이 철거되고 처용 공원으로 조성된 옛 세죽마을 자리 터에서 사람이 헤엄쳐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소재하는 동해 용왕이 나타난 바위섬이다. 
 
일부 옛 기록에는 동해 용왕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용이 바위를 딛고 나왔다' 또는 '바위 아래서 나왔다'라고 기록이 남은 유서 깊은 섬이다. 
 
온통 바위와 돌로 이뤄진 섬에는 커다란 입석이 있다. 그 앞에는 흙으로 된 부분이 있는데 그곳은 천하의 명당으로 예전에 외지인이 아버지의 묘를 써서 인근 마을에 줄초상을 당하는 재앙이 일어나 수소문 끝에 묘를 쓴 사실을 알고 파묘를 하자 재앙이 멈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처용암은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섬 안은 보호구역이라 들어가지 못하지만 처용가비가 있는 공원 인근은 기도의 장소로 쓰이고 있다.
 
망해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을 칭송해 노래와 춤을 췄고 용왕의 일곱 아들 중에 처용을 서라벌로 보내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려 백성들을 교화하고 국정을 돕도록 했다.  
 
헌강왕은 처용암에서 동해 용왕을 만난 이후 환궁해 영축산 동쪽의 좋은 땅에 절을 지어 망해사 또는 신방사라 했다. 그 뒤의 역사는 미상이며 조선 후기에 소실 됐다가 1962년 주지 영암(影菴)이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날 절터에는 신라 때의 망해사지 석조부도 2기가 있고 석조부도가 있는 위편 공터에 주춧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가지 더 보태면 신라 49대 헌강왕은 필자도 수염을 길게 기른 나이든 왕으로 생각했는데 11세의 소년 왕으로 등극해 11년을 통치하고 병으로 요절했고, 서라벌에서 활동했던 처용옹은 나이가 들어 동해로 돌아갈 때 망해사에 있던 작은 연못에서 용으로 화해 동해로 돌아갔다는 민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축제는 그 고장을 대표하고 홍보할 수 있는 행사인데 해마다 개최되던 울산의 축제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개최되는 등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 중 처용문화제는 1967년 시작된 울산공업축제를 시작으로 1992년 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제27회 처용문화제'로 명칭을 변경한 후 올해로 54회째 이어져 오고 있다. 
 
그동안 처용문화제는 처용문화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해 개최하다가 몇 해 전부터 울산문화재단이 주관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올해는 구 태화호텔 앞 태화강 둔치 체육공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 개최 된다고 추진단은 밝히고 있다. 행사 규모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다소 축소된다고 한다.
 
올해 열리는 제54회 처용문화제는 해마다 10월 초순에 개최됐으나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서인지 10월 30일에 개막해 11월 3일까지 3일간 개최된다. 전국 문화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처용 콘텐츠 무대공연 작품을 공개모집하고 참가부문은 무용, 음악, 퍼포먼스, 음악극 등 장르에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인 공연 영상을 선보이고 울타리를 쳐서 처용마을 정원을 조성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전국적으로 캐릭터 공모전을 실시해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을 마을기업 등에 의뢰해 캐릭터 응용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해마다 열리던 다양한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됐지만 처용문화제의 간판격인 올 들어 24년째 전시해온 필자의 처용탈전은 그대로 전시된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울산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필자의 처용탈전은 보람된 일들도 있었지만 말 못 할 애환도 많았다.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주로 두 가지를 궁금해 하는데 처용이 아랍인이 아니냐고 질문하면 난감했다. 대부분 처용의 아랍상인설 논문을 읽어보지 않고 언론에 보도된 단편적인 것들을 그대로 믿어 처용은 아예 아랍인이라고 단정 짓는 것과, 또 하나는 역신이 처용의 처를 범하였으니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역신은 천연두를 옮기는 여성으로 조왕신이나 삼신처럼 여자임을 설명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논문을 발표한 학자들의 잘못이라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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