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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천전리 각석. 문명대 교수 제공
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천전리 각석. 문명대 교수 제공

 

이사 겸 편집국장
이사 겸 편집국장

국회 국정감사팀이 이번주 반구대 암각화를 찾는다고 한다. 또다시 반구대 암각화가 정치인들 포토존이 될 전망이다. 14년 전 울산의 신생 언론사인 울산신문이 반구대 암각화 훼손을 세상에 알렸다. 영향력이 작다 보니 초창기 파장은 크지 않았지만 중앙언론과 방송매체들이 세계적인 바위그림의 현실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주대 연구팀은 거푸집을 짓고 최첨단 도구를 사용해 암각화 훼손 정도와 대책을 본격 연구했다. 지금 사용하는 기본 자료는 이 당시 만들어졌다. 조홍제 울산대 교수가 중심이 된 학술조사팀이 지표조사 등 안전문제를 점검했다. 이 과정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 암석이 퇴적암층이라는 사실과 풍화 정도가 4.5에 이르는 중대한 훼손 상태임이 밝혀졌다. 이때부터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문화유산 기운데 가치평가 1위인 반구대 암각화가 어찌 물고문을 당하고 있느냐며 항의가 빗발쳤다.

여론이 비등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당연히 정치권이었다. 그 무렵부터 국회 문체위와 지역정치권은 물론 총리·장관 등 유력인사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순례 1번지로 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금방이라도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낼 것처럼 흥분했다.

직접 관계가 있는 자는 즉각 조치토록 하겠다고 목젖을 세웠고 야당이나 환경단체는 문화재청을 성토하고 일부는 문화재의 소중함을 모른 채 식수만 고집하는 울산 시민의 무지몽매를 추궁했다. 참 딱한 일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 대표는 울산 시민은 왜 낙동강 물을 마시면 안 되느냐며 손가락질을 했고 지난해 목포에서 물의를 빚은 한 정치인은 울산의 집집마다 변기용량을 반으로 줄이면 식수가 해결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어쩌다 울산 시민은 문화반역자가 돼버린 셈이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에 포르투갈 코아계곡의 사례가 보태졌다. 몇 사람이 포르투갈에 다녀온 이후 울산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이었다. 바로 코아의 기적이다. 물론 코아 지역 이야기는 암각화 보존의 좋은 사례다. 하지만 코아와 반구대 암각화를 연결하는 일은 억지스럽다. 코아 주변은 산업수도도 아니고 근대화의 기수로 지형지물을 파괴하는 역사를 가진 도시도 아니다. 그저 부족한 전력 공급을 위해 수력발전용 댐을 만들기로 한 직후 암각화가 발견돼 보존운동이 벌어진 특별한 지역이다. 발전용 댐보다 문화재가 중요하다는 코아 주민의 반발이 암각화를 보존한 사례는 문화유산의 자발적 보존 사례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와 코아를 직립으로 연결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지난 9월 7일 태풍 하이선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지난 9월 7일 태풍 하이선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울산에 코아계곡의 이야기를 처음 알린 것은 울산신문이다. 지난 2010년 울산신문은 전국 언론 최초로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기획취재에 들어갔다. 지금 여러 언론에 등장하는 포르투갈 포즈코아 암각화 보존실태를 제대로 살펴본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포즈코아 암각화 박물관 측은 한국 언론 최초 취재라며 울산신문 취재팀을 반겼다.

포즈코아 암각화 박물관 책임자인 페르난도 안토니오 가르시아 디아즈 씨는 포즈코아 암각화의 보존책을 설명하며 댐 건설 전에 발견된 자신들과 다른 상황인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댐을 지은 상태에서 발견된 암각화와 댐 건설 시작 단계에서 발견된 암각화의 처리 문제는 엄연히 다른 사실인데도 이를 같은 사례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이 건설된 뒤 5년이 지난 겨울 어느 날, 말라 버린 댐에서 발견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다.

동네 사람들은 바위그림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치를 몰랐고, 탁본으로 먹고사는 이들은 대박을 예감했다. 공업센터 건설 이후 울산공단의 용수공급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젖줄이었고 이를 알기에 발견자부터 주민·행정 모두가 댐을 허물고 암각화를 살리자는 것은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코아의 기적 운운하며 사연댐을 헐어 내겠단다. 댐을 헐고 구곡을 되살려 원형 비슷하게 보존하겠다는 논리는 궤변이지만 누구하나 억지라고 말하지 못한다. 반구대 암각화 주변은 이미 온갖 인공물로 변질됐는데 원형 보존이라니 참 딱한 이야기다. 그때는 옳고 지금은 아니라는 논리는 위선이다. 암각화를 물 속에 잠기지 않게 물을 빼고 영구적으로 물길을 돌리면 되는 일을 두고 무슨 야단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물길로 원형을 바꾸면 안 된다던 문화재위원회가 새로운 입장을 내놨다. 우리 말이 맞았다며 댐에 문을 내고 물을 빼란다. 그러니 울산 사람들이 무시당한다. 울산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이들이 서울에서 국회에서 학술대회에서 토론회에서 변기를 반으로 줄이고 먹는 물을 아껴 쓰라고 호통을 친다. 예, 예, 그렇게 하면 유네스코가 울산의 기적이라며 세계유산 동판 하나 던져 줄 거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근대화를 위해 해안을 깎아 내고 산을 허물고 땅정 갈아엎고 댐을 만들어 환경을 뒤집어 놓을 때는 입 다물고 있다가 이제는 원형보존이란다. 개구리가 배를 두드릴 일이다. 이런 정도의 부당대우에도 의견이 갈리는 도시가 울산이다. 지난 시절에 대한 공부가 없었던 결과다. 모르니 눈만 끔뻑댄다. 스스로 당당하면 허둥댈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울산을 더 살피고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선사문화 1번지를 이야기 할 때 반구대 암각화를 첫째로 거론하는 일은 이제 보편적 화두가 됐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 모든 신비로움의 시작이 대곡천이기 때문이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의 시작점인 셈이다. 대곡천은 선사인 삶의 터전이었고 신라인의 유토피아였다. 천전리와 반구대, 두 암각화가 자리한 대곡천은 그 경치가 수려하고 골짜기마다 웅혼한 기상이 서려 흔히 백련구곡이라 불린다. 계곡 정점에 천전리각석이 있다.
 

찬찬히 가만가만 숨을 고르고 울산의 시작, 태화강 첫 물길을 더듬어 보면 대곡천이 왜 한국 선사문화의 시원인지 알 수 있다. 대곡천은 바로 우리 문화의 출발점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 물길 따라 걷다 보면 고래를 만난다. 대곡천굽이를 돌아 휘감기듯 빽빽한 직립암석의 위용이 압권이다. 풍경이 시야를 가리면 푸름을 모아 정자에 올려놓았다는 집청정(集淸亭)이 기다린다. 경주 최씨 가문의 문중 정각인 이곳은 고래를 만나기 전 한번은 배낭을 풀고 걸터앉아 볼 만한 곳이다. 시선을 정면으로 세우면 맞은편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 마리의 학과 학소대(鶴巢臺)라는 글자와 만난다. 놀랍다. 두 마리 학은 양각으로 학소대는 음각으로 차분하다. 오른편 학은 고개를 들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왼편은 한 다리로 서서 부리로 깃을 고르는 듯한 자세다. 태화강 하늘에 학이 날아야 하는 필연적인 연결고리다. 반구서원 흙담을 돌아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면 비로소 바다 냄새가 난다. 반구대 암각화다. 세상 사람의 아집과 불통으로 부서지고 짓물러 망신창이가 된 고래 떼가 세파의 소란스러움에 형체를 잃어가는 현장이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그 수면 아래 새끼 밴 범고래가 뿜어내는 신음소리가 들릴 것 같기만 하다. 그 웅혼한 현장이 지금 보존운동으로 뜨겁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성과가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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