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2000년대 이후 재개발로 급변…울산 토박이 추억 깃든 옛시내
[+영상] 2000년대 이후 재개발로 급변…울산 토박이 추억 깃든 옛시내
  • 전우수 기자
  • 2020.10.1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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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와 함께하는 우리가 몰랐던 울산] (5) 울산 원도심

중구 성남·옥교·북정·복산동 일대
삼산·신정동 개발전 울산의 중심지
울산읍사무소 등 역사성 깊은 시설
도시 개발 흐름 속 흔적없이 사라져
일제강점기 동헌 정문에 위치한 가학루(駕鶴樓)의 모습. 서울대학교박물관 유리건판 소장본
1930년대 동헌 남문에 위치한 가학루(駕鶴樓)의 모습. 서울대학교박물관 유리건판 소장본 (촬영 : 일본인 민속학자 아키바 다카시, 아카마츠 지조)

도시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한 지역을 일러 원도심(原都心)이라고 한다. 울산의 원도심은 태화강을 중심으로 강북에 위치한 중구 성남·옥교·북정·복산동 일대이다.
 
울산의 신도심인 신정·삼산 일대로 도시 기능이 이동하기 전인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울산을 이끄는 중심지역은 중구 원도심이였고, 아직도 중장년층에게 있어 울산의 시내는 추억이 깃들어 있는 중구다. 이런 원도심이 지금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 25년전 철거된 지역행정사 담긴 울산읍사무소
함월산 자락을 좌우로 울산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고층의 공공기관이 줄지어 들어섰고, 이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상가나 주택 개발이 한창이다.
 
게다가 기존 토박이들의 애환이 담긴 오래된 집들은 재개발·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상당 부분 철거돼 새로운 아파트촌 형성을 예고하고 있다. 

중구 북정동 동헌 가학루에서 대화를 나누는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전우수 기자. 김동균기자 justgo999@
중구 북정동 동헌 가학루에서 대화를 나누는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전우수 기자.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중구 원도심에는 일제강점기 전후 시대부터 이어져 온 각종 행정과 상징적 시설물들이 불과 20~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원도심의 침체와 신시가지의 개발 흐름 속에 다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원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한삼건 교수와 중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중구 중앙길 199)에서 만났다. 중앙동행정복지센터 자리는 울산의 역사적 시설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지만 무지한 시민의식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울산읍사무소이자 시청사가 있던 곳이다.
 
행정 개편에 따라 울산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읍사무소와 시청사 역할을 함께 했던 곳으로 근대 이후 울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해온 상징적 증좌와 같은 건물이었다.

1933년 1월 24일 신축된 울산읍사무소는 울산시가 시군 통합을 하던 1995년 헐렸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5년 전의 일이다. 한 교수는 울산읍사무소 건물 철거를 앞장서서 막아왔던 장본인이다.

당시 한 교수가 활동했던 울산대 도시 건축연구소는 울산시의 읍사무소 철거 추진 계획을 반대하며 철거 중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울산시에 접수하는 한편 언론 기고를 통해 울산시의 중요한 역사적 시설물인 읍사무소를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울산읍사무소가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울산읍사무소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울산읍사무소로 세워진 이 건물은 이후 울산시청사~울산시 중앙출장소~중구청사~옥교동사무소~중앙동행정복지센터로 서너 차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울산읍사무소는 1933년 1월 24일 지금의 자리에 신축됐다. 울산읍이 시로 승격된 1962년 6월부터는 자연스럽게 시청사로 쓰였다.

울산읍 승격으로 1933년 중구 학산동으로 이전 신축된 울산읍사무소(현 중앙동행정복지센터, 파리의 아르데코 건축양식) 모습. 한삼건 교수 제공
(위쪽부터)읍 승격으로 1933년 중구 학산동에 근대양식으로 세워진 울산읍사무소(현 중앙동행정복지센터) 모습. 울주군청사에서 울산시청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1990년대 초까지 옥교동사무소로 쓰였던 건물 모습. 한삼건 교수 제공
울주군청사에서 울산시청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1990년대 초까지 중구 옥교동사무소로 쓰였던 건물 모습. 한삼건 교수 제공

# 원도심 중심엔 시 유형문화제 제1호 동헌
현재 울산시청 청사가 지금의 남구 중앙로로 이전한 1969년 12월 이후부터 이 건물은 울산시 중앙출장소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이어 다시 1985년 울산시가 중구와 남구의 2구 1출장소 체제로 바뀌면서 이 건물은 또 중구청 청사가 된다. 중구가 울산 중구 단장골길에 새 청사를 짓고 이사를 한 1990년 9월까지는 중구청사로의 기능을 한다. 이후 1990년 10월부터는 옥교동사무소로, 2009년 1월 1일 소규모 동 통·폐합에 따라 지금의 중앙동행정복지센터로 변모한다. 당시의 중앙동행정복지센터 청사는 한 교수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5년 12월 철거됐다.
 
당시 상황을 한 교수는 이렇게 기억한다.

"울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적 건물이지만 행정 수장의 안일한 역사의식과 철학으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시장은 도농통합이 되고 민선시장이 선출된 새로운 시대에는 새집을 지어야 한다며 철거를 주장했다. 특히 동 단위 행정서비스시설인 동사무소에 주차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차장이 확보된 새 동사무소를 지어야 한다며 건물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울산 최초 읍사무소였고 시청·구청이었던 곳이다. 주민이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장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인지 모르는데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빚어놓은 참사다."
 
불행 중 다행히 한 교수는 강행되는 철거 현장에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건물의 실측조사와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을 해 울산 초대 시청사의 최후를 겨우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한 교수는 덧붙였다.
"건물이 철거된 후 9년이 채 안된 2004년 9월 4일 상북면사무소와 언양성당, 남창역사, 구 삼호교 등 5곳이 울산시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들 모두는 철거된 구 시청사에 비해 역사적 무게나 건축물의 질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작된 시기와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이런 변화를 맞게 됐으니 얼마나 기막히고 안타까운 일인가."

태화강변 황룡연(黃龍淵) 바위 절벽 위에 있다 왜란을 거치면서 소멸된 태화루(大和樓)는 1668년 울산 객사 학성관((鶴成館)이 재건되면서 남문루에 다시 지어졌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의 태화루 모습. 울산시 제공
태화사 경내 태화강변 황룡연(黃龍淵) 바위 절벽 위에 있다 왜란을 거치면서 소멸된 태화루(大和樓)는 1668년 울산 객사(客舍) 학성관((鶴成館)이 재건되면서 남문루에 다시 지어졌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의 태화루 모습. 울산시 제공

# 120년 역사 북정우체국 재개발에 헐릴판
중앙동행정센터를 뒤로 하고 울산 동헌 쪽으로 걷기를 얼마 안 돼 옛 울산초등학교 부지를 만난다. 울산시립미술관을 짓기로 추진했다가 객사 터가 원형 그래도 발견되면서 마땅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임시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울산읍사무소처럼 허무하게 헐려 나간 건물이 바로 울산초등학교다. 헐려버린 옛 울산초등학교 터는 임금에게 문안을 올리고 관리가 숙박을 하던 객사가 있던 곳이다. 학성관이라고 불렸던 객사는 세종 18년(1436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학성관 건물 4채를 수리해서 1907년 울산초등학교 전신인 태화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다. 나머지 객사 건물은 1934년 8월 모두 철거됐다. 울산초등학교는 1967년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됐다가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계획에 따라 2014년 8월 철거됐다.
 
하지만 매장문화재 조사 과정에서 객사터의 원형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사업은 중지됐고, 결국은 당시 북정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의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립미술관을 짓기 위해 멀쩡한 학교가 철거되고 만 것이다.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헐려버린 건물이 또 하나 있다. 울산중부도서관이다.

울산시는 옛 울산초등학교 부지에서의 미술관 착공이 여의치 못하자 인근 북정공원과 중부도서관 자리를 시립미술관 부지로 편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북정공원에 있던 박상진 의사 동상은 마땅한 이전 부지를 찾지 못한 채 중구청 창고에 있고, 1984년 울산지역 최초 공공도서관이었던 중부도서관은 2017년 10월 철거돼 현재 중구 시계탑 사거리 인근 상가에 더부살이 중이다.
 
북정공원은 앞서 1945년 10월 21일 당시 울산경찰서가 문을 열었던 곳으로 1992년 10월부터 중부경찰서로 활용하다가 1년 뒤인 1993년 10월 중구 남외동으로 옮겨 가면서 북정공원으로 조성됐다.
 
원도심의 중심에는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동헌이 있다. 울산읍지 등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숙종 때인 1691년에 부사 김수오가 창건한 것으로 나타난다. 1760년에 부사 홍익대가 중창하고 이름을 반학원이라고 했다고 한다.

1958년 중구 동헌 앞 삼거리에 위치한 광장에서 열린 시국집회장에 모인 시민들. 한삼건 교수 제공
1958년 중구 동헌 앞 삼거리에 위치한 광장에서 열린 시국집회장에 모인 시민들. 한삼건 교수 제공
1960년대 중구 성남동에 시외버스터미널(사진 왼쪽, 현 큐빅광장 앞 도로변 핸드폰 매장 일대) 앞 도로에서 펼쳐진 거리 퍼레이드 일행이 시계탑사거리로 이동하고 있다. 한삼건 교수 제공
1960년대 중구 성남동 시외버스터미널(사진 왼쪽, 현 큐빅광장 앞 도로변 핸드폰 매장 일대) 앞 도로에서 거리 퍼레이드 행렬이 시계탑사거리로 이동하고 있다. 한삼건 교수 제공
조선시대 말기부터 1900년대 말까지 울산 행정의 1번지였던 중구 북정동 동헌과 구 시가지 일대. 김동균기자 justgo999@
조선시대 말기부터 1900년대 말까지 울산 행정의 1번지였던 중구 북정동 동헌과 구 시가지 일대. 옛 울산경찰서(현 중부경찰서) 부지는 현재 울산시립박물관 공사가 한창이고 울산객사 학성관 이후에 들어선 구 울산초등학교 부지는 현재 임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옛 중부소방소 자리엔 울산 첫 철도역이

1930년대 중반 이 반학헌 바로 앞에 울산군청사가 신설됐다. 울주군청이 1979년 남구 옥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이곳에 군청사가 있었고, 1981년 12월 22일 동헌과 내아를 중건해 지금에 이른다.
 
중구 원도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상징적 건물이 북정우체국이다. 이 건물은 그동안 두어 차례 신축됐지만 120여 년간 한 자리에서 같은 일만 계속해온 울산의 하나 밖에 없는 공공기관이다. 하지만 중구 재개발 계획에 따라 역사 속에 사라질 위기에 있다.
 
북정우체국은 울산 관아의 형리라는 직책의 관리들이 머물던 형리청이 있던 곳으로 대한제국기인 1898년 이곳에서 울산지역 우편업무가 처음 시작됐다, 1950년부터 울산우체국이라고 명칭이 바뀌어 오다가 1977년 울산우체국이 신정동으로 옮겨가면서 지금의 북정동우체국이 됐다.
 
중구 성남동 일대 구 중부소방소 부지에는 철도역이 있었다. 1921년 10월 25일 개통된 첫 울산역이다. 구 현대백화점에서부터 소방서와 전신전화국을 거쳐 우정지하차도에 걸쳐 대구역을 기점으로 울산까지 이르는 조선중앙철도 경동선 구간의 울산 종점이 있던 곳이다.
 
1935년 12월 16일 부산~울산을 잇는 동해남부선이 개통돼 구 역전으로 불리는 학성동의 울산역이 신설될 때까지 울산의 관문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울산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교수는 "역사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은 흐려지는데 과거 우리 모습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립과 보존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글=전우수기자 jeusda@ 사진=김동균기자 justgo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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