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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상황이 완화된 탓인지 지난 주말 나들이 인파가 부쩍 늘었다.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대곡천 일대는 가을빛이 빨리 찾아온 까닭에 찾는 이들이 더 많았다. 지난여름 물폭탄에 수면 아래로 내려간 반구대암각화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현장에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눈길이 모아졌다. 여전히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그 열기와 관심은 자랑스러웠다. 지난주 반구대암각화와 관련한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울산박물관은 3D 프린팅 방식으로 반구대암각화 실물 모형을 제작해 시민에게 공개한 것과 반구대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울산시의 공식적인 기구가 출범했다는 소식이었다. 

울산박물관이 제작한 모형은 반구대암각화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홍보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9개월간 제작 기간을 통해 완성됐다. 크기는 가로 8m, 세로 4m다. 기존 복제 방법이 아닌 3D 스캔을 통한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져 쪼기, 긋기, 갈기 등 표현 기법이 섬세하게 표현된 점이 특징이다. 이번에 적용된 3D 프린팅 기술은 프린터로 평면으로 된 문자나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도형을 찍어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실제 선사시대 사람들이 새겼던 표현기법이 섬세하게 재현됐다는 점이 획기적인 부분이다. 이 모형은 오는 12월 프랑스 라로셸박물관에서 울산박물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시 '반구대 고래, 라로셸에 오다'에 출품될 예정이다. 실물 크기의 반구대암각화가 세계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하나의 뉴스는 절차에 대한 이야기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위원장은 송철호 울산시장이 직접 맡았다. 시장이 나서서 반구대암각화를 챙기겠다는 의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가 출범한 날 첫 회의 자리에서도 이같은 의지는 잘 드러났다. 십수년간 반복된 질곡의 시간동안 반구대암각화는 물고문을 당했다. 그 오랜 질곡의 시간 때문에 보존 문제는 언제나 예민한 이슈였다. 이날 회의도 그랬다.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온 전문가의 눈에는 혼란스러웠겠지만 지역사람들에게 물문제와 보존문제는 언제나 동전의 양면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서 빠지지 않는 뿌리 깊은 오해였다. 이날 첫 회의 자리에서도 외부 전문가는 "울산시민들이 물을 절약하는 실질적인 모습을 시민운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외부 전문가는 "대곡댐이 건설될 때 사연댐이 필요없다는 점을 전제로 했으니 사연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참 딱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전문가 그룹에서 이런 발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는 현장에 있어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주장이 마치 검증된 사실로 인식돼 전파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일반인이 아닌 암각화 전문가나 문화재 전문가가 울산의 물 문제를 암각화 보존문제와 너무나 쉽게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현장을 너무나 생생하게 지켜본 그 날, 필자는 솔직히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외부의 시각으로는 여전히 울산시민은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물절약 조차하지 못하는 문화 미개인 수준이었다. 

현장에서는 두 사람 간의 토론이 불가능했기에 간단하고 명료하게 몇 마디 반박으로 마무리했지만 이 자리를 통해 그에게 묻고 싶다. 어떤 근거를 가지고 울산 사람들이 물을 함부로 사용하고 절약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지 밝혀 달라. 사연댐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는 울산시민들은 하루 9만여톤의 물을 어디서 충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대안을 이야기해 달라.  대곡댐은 사연댐을 부수기 위한 댐이 아니라 사연댐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보조댐으로 건설된 사실을 왜곡한 저의는 무엇인지 밝혀 달라. 그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면 제발, 앞으로는 입을 다물어 주기 바란다. 

또 하나, 여전히 음모론처럼 퍼지고 있는 사연댐의 통수터널 존재에 대한 유언비어다. 이날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어떤 인사가 제기했지만 정신 나간 한 선출직 공직자 출신 인사가 SNS를 통해 퍼다 나르며 여론을 호도한 이 문제는 분명한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

괴담처럼 흘러 다니는 이야기의 핵심은 지난 1965년 건설한 사연댐에 통수관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연댐은 다목적댐으로 만든 댐이 아니기에 댐에서 물을 빼내는 수문이 없는 댐이다. 다목적댐은 저수와 수위조절, 발전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는 댐이지만 사연댐은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저장기능에 충실한 댐이었기에 그런 기능이 필요 없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유언비어는 떠돌고 돌고 돌아 이제는 사실처럼 구전되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가 나오게 된 부분은 사연댐 여수로 아랫부분에 소규모 터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였다. 이 터널은 사연댐 축조 당시 정수장으로 댐의 물을 보내는 관로를 묻으며 만든 임시터널이다. 이 터널은 길이가 짧고 안쪽이 폐쇄돼 터널이 아니라 일종의 창고역할을 했던 임시시설에 불과했다. 이 부분은 이날 회의에서도 제기돼 수자원공사 관련 책임자가 직접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조금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보면 사실관계가 명확한 부분을 확대하고 과장해서 퍼 나르는 인사의 입술이 빨갛게 달아오를 부분이다. 

울산박물관이 공개한 반구대암각화 3D 모형. 울산박물관 제공
울산박물관이 공개한 반구대암각화 3D 모형. 울산박물관 제공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이런 따위의 오해와 왜곡된 사실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오해와 왜곡의 시간은 이제 더 이상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울산시가 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등재 추진위를 출범시켜 반구대암각화를 세계유산에 올리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1월 문화재위원회의 심사에서 반구대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목록 선정에 올리는 부분을 '보류'했다. 그 이유의 핵심은 탁월한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울산박물관이 3D 프린팅으로 실물모형을 만들고 이를 프랑스로 보내는 작업을 하는 일도 탁월한 가치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이다.

보류 결정을 한 문화재위원들이 요구한 보완 사항이 바로 반구대 암각화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라는 점이었다. 울산시와 박물관 측은 이를 위해 반구대암각화와 국내외 다른 암각화의 비교 연구를 통해 역사적, 문화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특히 사이펀 방식으로 상시적인 물관리로 반구대암각화의 침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이제 울산시의 바람대로 반구대 암각화가 연내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면, 지난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이후 11년 만의 성과로 기록되는 중차대한 변화를 맞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마지막까지 문제가 될 울산시민들의 식수와 사연댐 폐쇄 부분이다. 등재 추진위에 참가한 전문가조차 아무런 의문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이 울산시민들이 물을 함부로 낭비한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은 서울식 사고의 핵심이자 울산에 대한 너무나 잘못된 시각이다. 사실을 따져보자. 울산시민들이 정말 물을 낭비하고 있을까. 몇 해 전 자료지만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자료의 신빙성은 확실하다고 밝혀둔다. 울산발전연구원이 수개월간 조사한 내용이다. 울산발전연구원의 조사결과 울산시민 1명의 하루 물 사용량은 252ℓ로 전국 평균 278ℓ의 91% 수준이다. 이는 전국 7대 도시 중 가장 적은 것으로 울산이 물 절약 모범도시의 자리에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어쩌다 울산시민들은 물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됐나.

지난 1971년 겨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을 때 사연댐은 울산공업센터의 용수공급을 하는 1등 공신이었다. 7,000년의 원형을 간직했던 대곡천 역시 사연댐 건설과 함께 지리적 자연적 생태적 변화를 겪고 난 이후였다. 대곡천의 유속이 달라졌고 암각화 주변의 풍광도 변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사연댐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물기둥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해왔다. 그리고 이제 울산시민의 식수원으로 상부의 대곡댐과 함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적폐란다. 부숴야 한단다.

핵심은 전문가그룹이 살고 있는 서울식 사고의 왜곡이다. 가정해보자, 서울시민들이 식수로 마셔야 하는 수도권의 상수원지역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발견됐다면 어떨까. 가령 팔당댐 근처에 반구대암각화와 비견될 선사시대 암각화가 발견된다면 문화재청은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문화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무지몽매한 수도권 주민들이 물을 포기하지 않고 문화유산을 사멸시킨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식수는 당장의 생존문제다. 대안을 찾고 대체 수원을 확보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일이다. 기본부터 울산을 무시하고 잘못된 정보로 왜곡하는 시각이 문제를 꼬이게 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길 당당하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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