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심심      

엄마는 국이 심심해서 소금을 넣고
이야기꾼은 심심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방 안이 심심해서 음악이 돌아다니고
먼지가 사뿐 발레를 하다 다리가 아파
가구에 골고루 사이좋게 내려앉았다.
이리하여 심심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옥용 동시집 '고래와 래고'(푸른책들·2008)에서

이옥용 시인의 동시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심심'으로 동시자전거 타고 동화마을 한 바퀴 문을 엽니다. "이리하여 심심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얼마나 능청스러운 표현인지요. 동시세상 동화세상을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을 하고 계신 이옥용 시인의 동시들은 익살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림책을 보는듯한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림책 얘기 나온 김에 이야기 동시 한 편 들려드릴게요. '곰돌이가 우리 집에 온 날'이라는 동시인데요, 6페이지짜리 이야기 시가 펼쳐진답니다.    

혼자 집 보는데/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어/마구마구!/아파트가 부서질 정도로 요란하게!/난 잔뜩 인상 쓰며/현관문 벌컥 열고 외쳤어/"누구세요?"/우리 집보다 큰 흰곰이 말했어/"나야/얼음이 몽땅 녹아 떠내려왔어/이리로/도와줘!"/ -이옥용 동시 '곰돌이가 우리 집에 온 날' 부분    

눈치 채셨겠지만 '우리 집보다 큰 흰곰'은 네, 북극곰이에요. 얼음이 몽땅 녹아서 북극의 한 어린이 아니 한국의 한 어린이가 사는 집으로 떠내려 왔던 거지요. 이어지는 이야기 무지 궁금하시죠? 구청에도 찾아갔고, 경찰서에도 찾아갔고,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까지 찾아갔다는. 하지만 어디의 누구도 흰곰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얘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써 내려가셨는지. 피자 치킨도 "헉, 분발해야겠어!" 할 만큼 뛰어난 맛의 동시라면 믿으실까요. 으음, '새하얀 성'이란 동시도 그 맛이 만만찮답니다.

새하얀 성이 있네/그곳엔 새하얀 사람 살까?/밀가루보다 흰 눈보다 새하얀?/그사람은 언제나 새하얀 말만 할까?/웃음소리도 눈물도 새하얄까?//마음씨 까만 사람 거기 가면/금방 들통나겠다/착해질 때까지/그곳에 가지 말자/ -이옥용 동시 '새하얀 성' 전문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호호 반성이 되신다고요? 이제부터라도 새하얀 성의 성민(聖民)이 되기 위해 애쓰시겠다는 어른들이 폭발적으로 생겨나기를 바래봅니다. 기존 동시의 틀을 과감히 깬 이야기 동시들로 빼곡한 나는 "나"표 멋쟁이! 웃음 속에 숨겨진 풍자의 세계에서 마음껏 노시길 바랍니다.
옛날 옛적 동굴엔/왜 나처럼 잘못 그린 그림이 없지?/옛날 옛적엔 모두 잘 그렸나?/아니면 잘 그리는 사람 딱 하나만 살았나?/아니면 벽이 알아서 잘 그려줬나?/아니면 못 그리는 사람은 그리지 않았나?/아니면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 그린 그림은 저절로 없어졌나?/ 이 동시의 제목 '의문점'처럼 의문점으로 가득 찬 동시의 성으로 초대합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