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도 -홍수진 시인에게
문영
깡통더미에 무슨 볼일이 남아 있다는 걸까
늦가을 햇살 아래 벌 떼는 붕붕거리고
공터, 먼지 바람 불어
구절초도 문 닫고 떠나 버리면
무서리 내린 길은 시린 마음
가을이여, 웅웅대는 벌 떼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어서
몸속에 보일러를 놓아
긴 겨울 오랜 외로움을 견디게 하시길
찌그러진 캔에게도 소멸을 주어서
즐거이 그들의 몸을 땅에 묻게 하시길
가을이여, 빈 것 가득한 눈빛이여
지상에서 헤매다 돌아갈 날짜를
헤아리고 있는 이들에게도
비워서 세상 넓은 나라로 이끌어 주시어
마침내 온전한 잠 이루게 하시길
△문영: 거제 출생. 1978년 최정규 시인 등과 '물푸레' 동인으로 활동. 1988년 '심상' 문학상으로 등단. 창릉문학상(2019) 수상. 오영수문학관 문예창작(시) 지도교수(현). 시집 '바다, 모른다고 한다'외 다수. 비평집 '변방의수사학'(2018). 산문집 '발로 읽는 열하일기'(2019).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 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뛰우는' 최백호님의 '영일만 친구' 노래 가사 중 일부다. 이 노래의 주인공인 홍수진님. 1997년 9월 2일에 세상을 뜨셨다. 20대 포항에서 DJ 활동하실 때 최백호님과의 인연으로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다. 그 후 울산에서 왕성하게 詩 뿐만 아니라 방송 그 외 문화 전반에 활동하시다 가을이 시작하는 즘에 돌아가셨다. 고인의 생전에 몇 번의 모임에서 뵌 적이 있어 '무서리 내린 길은 시린 마음'으로 홍수진님을 추모하는 시인의 그 길 위에 같이 서게 된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단명하신 고인을 향한 시인의 그리움이 절절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함께 간절해진다. 단풍아래 술잔을 기울이며 詩 이야기, 사는 이야기로 가을밤 깊어가는 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에 고인이 떠난 이 가을 더 쓸쓸하고 외로움으로 견뎌야하는. 같이 걸었던 거리, 같이 앉아 보았던 바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걸으며 나누었던 詩情, 어쩜 고인에 대한 추억은 세월이 갈수록 어제 나눈 대화처럼 더 선명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오히려 '오랜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처방이 될 수 있는지 모른다.
이 가을 또 어디에서 아픈 죽음들이 있을 것이다. 먼저 가고 뒤에 간다는 차이 외에는 누구나 맞을 수밖에 없는 죽음이기에 '지상에서 헤매다 돌아갈 날짜'의 부탁에서, '온전한 잠 이루게 하시길' 기도에서 시인의 심정이 평안해 보인다. 고인을 향한 그리운 마음의 깊이도 평안하길.
도순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