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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소리가 하루 열두 번도 더 들려온다. 재채기 한 방에 창문이 덜커덩거리고 이 여파로 아파트 담벼락까지 흔들리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 몸속에 장착된 대 포탄. 버튼을 제 맘대로 조작하는 천지무법자 하나가 분명 몸 어딘가에 살고 있다. 심심하면 쏘아대며 이웃인 내 마음에 난동을 부린다.
 
뉴스에서 보니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견디다 못한 아래층에서 막대기로 천장을 쑤셔댔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 이웃 아파트에서는 한밤중에 어느 아저씨가 코뿔소처럼 씩씩대며 윗집을 들이박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한쪽이 이사를 가는 일이 일어났다. 어디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우발적 칼부림까지도 일어난다니 일상이 테러 밭 같다. 
 
발자국소리, 물 내리는 소리, 가전제품 돌아가는 소리에 비하면 재채기는 시답잖은 소리인가. 그런데 나는 왜 재채기가 터져 날아올 때마다 내 몸이 분해될 것처럼 치가 떨리는지. 당장 팔을 걷어 부치고 찾아갈까 수십 번 망설였다. 눈을 세모로 치켜세우고 시뻘건 입술로 껌이라도 씹으며 팔을 걷어 올리고 한판 붙고 싶었다. 괜히 나서지 말고 관리소에 일러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보나마나, 막상 재채기주인을 만나면 아무소리 못하고 돌아설 나. 발자국소리 때문이라면 한번쯤 하소연했을 수도 있겠지만, 재채기는 그럴 수 없었다.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랑이고 나머지 하나는 재채기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 생리적 현상을 어떻게 틀어막는단 말인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뿐, 참을 수 없는 소음 때문에 짐을 싸야하나 싶다가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세상 다 다스려도 마음만은 범접할 수 없는 지대다. 몸속 어딘가 손이 닿을 수 없는 곳, 재채기 포탄을 움직이는 천지무법자 곁에 붙어살지도 모르는 이 마음. 바로 곁에 있는 천지무법자 하나도 해치울 수 없을 만큼 무능한 것이 또한 마음이다. 그러니 저 재채기 주인도 튀어나오는 포탄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묘안을 찾다 생각해낸 것이 재채기를 묻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해와 관용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사방 벽 속에 재채기소리를 묻고 다시 벽을 발라버리리라고. 에드거 엘런 포의 <검은 고양이>에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던 고양이를 벽장 속에 묻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재채기가 들려올 때마다 무시(無視)의 열쇠로 벽을 열어 소음을 묻고 다시 무관심으로 발라버린다. 몇 번 그렇게 하자 재채기는 이제 벽장 속이 제 있어야 할 곳인 양 스스로 빨려 들어간다. 벽장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다. 내 귓속으로 들어오면 길을 잃어버리는 재채기에 한동안 평안했다.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네, 라고 생각했을 즈음 다시 고갤 쳐들기 시작한 대 포탄소리. 한동안 벽장 속에 묻혔던 재채기소리까지 벽을 긁으며 기어 나와 합세한 듯 더욱 신경을 긁어댄다. 무시와 무관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귀만 더 예민해진다. 재채기는 날마다 우리 집 벽이란 벽은 다 허물어버리듯 기성을 부린다. 
 
날씨가 선득해지자 창문을 닫는다. 아니 그 집도 창문을 닫은 모양이다. 여전히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재채기는 이제 우리 집 유리창에 와서 붙는다. 유리창이 들썩인다. 유리창떠들썩나비가 창문에 붙어서 날개로 파닥거려대는 것 같다. 팔랑나비과에 속한 유리창떠들썩나비는 너무나 요란하게 풀밭을 날아다니는 바람에 붙여진 이름인데, 날씨가 서늘해지자 이웃집 포탄이 유리창떠들썩나비로 옷 입고 유리창을 때리는 듯하다.
 
이 재채기와 한집에서 사는 식구들은 어떠할까. 집안의 물건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귀를 틀어막을 것이고, 식구들의 귀도 무관심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일까. 옆집 사정을 생각하다가 사방팔방을 떠들썩대는 유리창떠들썩나비를 또 어떻게 하면 두들겨 잡을까 고민 중이다.
 
멀리 있는, 갓 백일 지난 '샛별'이로부터 영상전화가 온다. 샛별이 엄마가 제 딸 자랑이 미어진다. 자기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다고, 벌써 말을 하는 것 같다고. 엊그제 뒤집기를 했는데 이제 금방 앉을 것 같다고. 모바일 화면 속에서 팔다리를 잠시도 가만 두지 않고 요란을 떨던 샛별이가 갑자기 으앗! 으앗! 하더니 재채기를 폭발한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우리 샛별이 요즘 꼭 이렇게 큰 소릴 내지르며 재채기를 하네! 너무너무 귀엽지?" 샛별 엄마의 웃음소리에 맞춰 나는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대답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예쁘고 화통한 재채기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네. 샛별이 재채기 대박! 짱! 짱! 이뿨, 이뿨, 이뿨어어!"라고. 
 
순간, 유리창떠들썩나비 여러 마리가 그새 창문에 붙어 앉으며 난리법석을 피운다. 이그! 또 시작이다. 우리 샛별이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질의 유리창떠들썩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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