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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면 문득 유년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느낌 그대로 오늘은 아이들에게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의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를 읽어 주었다. 처음에 무서운 이야기를 읽어 줄 거라고 했더니 어떤 아이는 무서워서 싫다고 하고 또 몇은 "저는 전혀 무섭지 않아요. 귀신도 안 무서워요"라고 제법 큰소리를 친다.
"무섭다고 피하면 엄마, 아빠 옆에서 영영 떠나지 못하고 두려움만 가지고 살게 될지 몰라. 일단 한번 들어보자"
무섭다는 아이를 달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산한 계절이 사슴뿔 숲에 찾아왔다. 하늘은 우중중한 잿빛, 잎사귀는 붉게 물들고, 마치 살아있는 듯한 안개가 나무들을 휘감으며 퍼져나갔다' 안개처럼 천천히 숲을 소개했다. 이야기만큼 중요한 것도 분위기이니까. 매번 조잘대기 좋아하던 아이들은 입을 꼭 닫고 귀를 세웠다.

이 책은 액자식 구성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대는 아기 여우들이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직접 무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야기꾼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이야기꾼은 총 8편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우들은 무서운 이야기에 겁을 먹고 한 마리씩 집으로 돌아가는데 가장 겁이 많을 것 같은 막내만 주인공 율리와 미아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게 된다.

2020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인 이 책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은 우리 주변에 있고 주변에 마주할 수 있는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성장 이야기이다. 정말 아이들이 무서워해야 할 것이 괴물이나 귀신, 좀비 따위일까? 이 책을 읽어 보면 꼭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그 변화는 두려움을 준다. 호의적이던 누군가가 등을 돌리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모든 변화를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어른들의 마음이지만 반대로 아이들에 상처를 주는 것도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두려움 속에 성장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가진다.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관해 알려주는 책이다. 세상은 그만큼 험한 곳이고 그 세상을 살아가려면 거칠게 나아가야 한다고.

최미정 아동문학가
최미정 아동문학가

책 읽기를 끝내자 아이들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 때문에 입술을 지그시 문다.
아이들의 책 읽기는 항상 그렇게 끝난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작은 머리로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지혜다. 알고 싶은 만큼 이해하고 놀 거리를 찾아 나서는 아이들. 그래서 힘든 환경에서도 항상 웃을 수 있는 아이들만의 에너지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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