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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구름을 팝니다

                                                                       안이삭

그 가게
나도 가본 적 있다
멕시코 모자 타고 태평양 건너는 꿈을 꾼 날
참지 못하고 달려갔다
'멕시코모자구름주세요'

그는 마법사였다
겨우 혼자 앉을 만큼 작은 가게에서
수천가지 구름을 관리하고 있었다
미친 여자가 와서 시간구름을 달라고 했을 때
딱 한번 이맛살을 찌푸린 것 말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님이 원하는 구름을 내어주었다
그마저 아무도 몰래
더 위대한 마법사의 주소를 자세하게 일러주었다는 후문이다
내 앞의 여자는 대용량 밥솥구름을 원했고
그 앞의 남자는 빨간색 넥타이구름을 사갔다

포장지 안에
자기가 원하는 구름이 들어있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구름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멕시코 모자구름을 손에 넣는 순간
멕시코 모자 타고 태평양 건너
남미의 뜨거운 먼지바람에 휩싸인 듯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당연한 증상이다
얇은 포장지 안쪽에서
쉬지 않고 뭉쳤다가 풀어지는 구름의 움직임은 너무 뜨거워서
가끔 지울 수없는 화상으로 남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구름이 가까이 있었다는 증거

포장지를 뜯고 구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드는 일은
마법사의 책임이 아니다
어쩌다가 운 좋은 사람은
구름이 흩어지기 전에 붙잡기도 했다지만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뒷일에 대해서는
소문으로조차 들리지 않는다

종로3가 지하도 계단 끝
오늘도 마법사는 주름 깊은 얼굴로
구름이 빠져나간 뒤 버려진 포장지들을 쓸어 담는다

△안이삭 시인 : 대구 출생. 2011년 계간 '애지' 등단. 시집 '한 물고기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여름, 그 난리를 치루고 나서일까 요즘 가을하늘이 이렇게 고울 수가 없다. 알록달록 팡팡 터져 나오는 단풍의 현란함에 비해 담백한 하늘은 새로 맞는 공간처럼 보인다. 어떤 날은 맥 놓고 쳐다보다가 그만 구름 속으로 빠져버린다. 멕시코모자 뿐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가 되어 하얀 폭포에 올라 파란 호수의 나라로 풍덩 빠졌다 나온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가만히 구름을 보고 있으면 시간은 참으로 빨리 달아난다. 새가 빠르다지만 구름처럼 자유롭지 못하고 구름처럼 자유자재 변신이 가능하지도 않다. 개구쟁이처럼 사물을 그려내고 휘젓는 구름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열두 번도 변한다.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고 싶다면 구름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져 보시라.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항공권을 판다고 한다. 코로나에 붙잡힌 사람들을 위해 목적지는 없지만 여행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상품이란다. 목포, 부산, 대구 상공을 한 바퀴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기내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면 구름은 그곳에 있다. 구름관리사를 찾던지 구름 꽁무니를 찾던지 간에 가슴 두근거리는 당연한 증상을 경험하는 것에 삿됨이 있어서는 안된다. 순진무구하게 빨려 들어가야 한다. 벅찬 감동을 가득히 가족, 친지, 친구에게 담뿍 안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탱탱했던 고무줄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도 같고 덤덤한 일상을 덤덤하다고 말할 수 없는 요즘 같은 때 구미에 맞는 구름 한 장 사서 한바탕 놀아나 보자.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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