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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50년전 겨울, 울산에서 고대사의 기적이 시작됐다. 바로 천전리암각화 발견이다. 천전리 암각화 발견은 단순한 바위그림의 발견이 아니었다. 사선으로 숨은 암면에 새겨진 문양과 글자, 그림 등은 한반도의 고대사를 다시 쓰게 할 정도의 가치를 가진 유물이었다. 바로 그 천전리암각화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주말부터 이어지고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지난달 30일 동구 현대라한호텔에서 '천전리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천전리 암각화의 가치와 의의' 학술대회를 개최해 전문가 발표와 토론 시간을 가졌다.

1970년 12월 24일 동국대 박물관 울산지역 불적조사단 책임자로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한 문명대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천전리 암각화의 발견은 시작은 작았지만 결과는 대흥하게 된 역사적 발견"이라며 "천전리 암각화는 한국 청동기 암각화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암각화이자 문자적 성격을 가진 청동기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석호 박사는 '천전리 암각화 속의 형상 읽기' 주제발표에서 "천전리나 대곡리 등의 암각화는 형상의 개체 수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그려진 제재와 주제 그리고 조형 양식의 독창성 때문에 인류 문명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천전리 암각화와 같이 여러 차례 덧그려진 그림을 판독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무엇이 그려져 있고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읽어내는 일은 연구자에게 주어진 책무"라며 "미스터리한 이 암각화의 문장과 구조가 조속히 판독돼 선사 시대 천전리 화가와 그 문화집단이 품고 누렸던 사유 및 조형 세계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진영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는 '천전리 각석 현황과 보존관리 방안'에 대해 언급하며 "각석의 화면에 발생돼 있는 박리, 박락현상과 균열은 현재의 상태만으로도 상당히 심각하지만, 급속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암석의 손상은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드러나지 않다가 한 순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항시 관찰하고 변화를 살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상면 지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며 토양, 수목정비, 초본류의 정기적인 제거 등이 요구된다. 또한 하부 지면 정비를 통해 각석의 암반하부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며, 암반이 신속히 건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천전리암각화에 대한 애정이다. 암각화박물관은 이 행사와 함께 지난 2일부터 천전리 암각화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를 열고 있다. 내년 4월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선 천전리 암각화가 위치한 지역 자연환경과 지역사, 선사시대 동물 문양과 기하 문양의 의미, 천전리 암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왕의 행차를 알려주는 각석과 화랑, 승려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문제는 천전리각석의 현재 상황이다. 천전리각석은 반구대암각화에서 대곡천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이 암석에는 각종 기하학적 문양과 도형, 그리고 글과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암석의 윗부분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돼 있다. 아래쪽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암석이 왜 세계 최초냐면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문화가 한 암면에 새겨진 기록물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수천 년의 기록이 하나의 암석에 펼쳐져 있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보적인 문화유산이다.

무엇보다 천전리 각석이 중요한 것은 역사시대 이전, 한반도에 인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간부터 역사시대 이후의 장대한 세월을 담고 있는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천전리각석은 그런 의미를 가진 국보다. 울산에 있는 세계 최초의 고대 유물은 대부분 인류의 이동 경로와 관련된 고대 한반도의 유전자 지도다. 바로 이 귀중한 증좌가 한둘이 아니라 다양하게 분포한 지역이 울산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한반도 인류의 이동 증좌는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다. 검단리 환호 유적은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관리하는 사람조차 하나 없다. 세계 최초의 벼농사 유적지인 옥현 유적지는 아파트 공사에 밀려 유적관에 조그맣게 보존돼 오다가 인건비 등의 이유로 유지가 힘들다며 아예 폐관해 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인류 최고이자 최대의 보물지도인 반구대암각화는 2020년 여름 두 차례 태풍과 큰 비에 수몰돼 쓰레기 더미에 쌓이는 수모를 겪었다.

천전리암각화라고 다르지 않다. 국보라는 이름으로 손도 못 대게 하던 문화재청이 바위 위에 낙서자국이 보도되자 CCTV를 설치하는 요란을 떨었지만 갈라진 표면이 제발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적어도 암각화 앞면에 보호용 방탄 유리막이라도 설치해야 하지만 그냥 자연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당장 보호책을 찾아 장기적인 보존대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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