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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처음 자리한 곳이 장생포와 인접한 야음동이었다. 그때 남편 사무실이 장생포 부둣가에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야음시장 옆 단독주택에 전세방을 마련했다. 좁은 단칸방에 차린 신혼살림이었지만 알뜰살뜰 일구어서 새 보금자리 아담한 아파트를 장만한다는 꿈에 하루하루 희망 속에 살았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싸서 남편 사무실 옆 바닷가로 가서 같이 먹었다. 집에서 혼자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밥맛이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 소리 속에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안동 두메산골이 고향인 나는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트이고 새로운 세계와 맞닿은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방파제에 즐비한 포장마차도 이색적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을 맞아 생선회를 즐기려는 인파들로 붐볐다. 각 점포 주인들은 갓 잡아 올려 퍼덕거리는 생선으로 회를 뜨느라 쉴 새 없이 분주했다. 하루는 남편이 도시락을 마다하고 회를 먹자고 했는데 처음 접한 생선회의 쫄깃하고 고소한 맛에 그만 반해 버렸다. 생선을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촌놈 출세한다더니 이후로 회 먹는 빈도는 늘어만 갔다. 말로만 듣던 '울산 장생포'를 접하니 하나하나가 새롭고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그 유명했던 고래잡이의 본거지였고 울산의 대명사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이곳 항만회사에 취업해 수년을 보냈기에 이미 일상에 익숙해 있었다. 그 도움으로 모든 게 낯설었던 내가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장생포도 자연 생태계의 중요성을 망각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그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종을 가리지 않은 무분별한 포획은 멸종 위기에 처하는 지경까지 갔다. 결국은 포경이 금지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생업으로 삼아 삶의 터전을 일구던 토박이 주민들도 하나, 둘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 소리로 왁자지껄했던 초등학교마저도 폐교될 처지에 놓여 뱃고동 소리와 함께 번성했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폐허의 마을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 화려한 부활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래의 고향과 터전을 지키려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과 민관이 합심해 잘 보존한 결과 머지않아 다시 고래들이 하나둘 살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활기를 되찾은 마을은 문화 특구로 지정되었다. 고래 문화의 고장이란 명맥을 이어받기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백방으로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고래박물관을 비롯해 고래 조각공원, 선사시대 고래 마당 등등 테마를 담은 대대적인 공원이 조성되었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장생포를 찾았다. 휴일이라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붐벼 활기가 넘쳤다. 메인 고래광장 한쪽에는 멋스럽게 복원된 포경선 제6호 진양호가 옛 명성을 떨치던 그대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래생태체험관에 들어서니 미니 아쿠아리움을 연상케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이 시원하게 맞아 주었다. 아롱이, 꽃분이, 두리 등 저마다의 깜찍한 이름을 한 돌고래들이 다정하고 평화로이 유영하고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광장 건너 조금 떨어진 언덕배기 기슭에 자리한 고래 문화마을은 고래잡이와 어로 모습을 재현한 각종 조각물과 전시물들이 시대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장생포 옛 마을은 호젓하고 아담한 단장으로 한참이나 발길을 머물게 했다. 60년대 장생포 국민학교를 복원한 모습, 교복 입어보기, 달고나 체험하기 등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들이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잘 보존하자는 메시지로 다가와 흐뭇했다. 마을 언저리에 있는 수생 식물원을 지나 잘 조성된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 전망대에 올랐다. 사방으로 펼쳐진 장생포 앞바다가 울산대교를 배경 삼아 장관을 연출했다.
 
한나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양 생태 문화체험의 기반조성을 하고 사람과 고래가 함께 꿈꾸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많이 찾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래 바다 여행 선을 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지만 곧 타게 되리라 맘먹는다. 그때는 더 넓은 꿈을 키워나갈 무대에서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 여행을 만들어야지.
 
30년 전 전 신혼 시절, 고래 잡던 장생포 아득한 바다마을에 남편과 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마주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 그 앞바다로 힘차게 헤엄치는 고래 떼가 솟아오른다.
 
석양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운 장생포, 웅장한 귀신고래의 출몰을 기다리며 한참이나 부둣가를 서성였다. 신혼의 달콤한 추억이 저 멀리 수평선 위에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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