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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식단표가 나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두고 교실 게시판에 붙여둔다. 식단표가 종이 안내장으로 나오던 시절에는 월 말마다 아이들과 각자 식단표를 보며 다음 달의 낙을 찾던 일종의 의식이었는데, 요즘에는 식단표가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교직원에게는 파일이 따로 전달되어서 나만의 월례 행사가 됐다. 
 
게다가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날이 많지 않다 보니, 한 달의 절반은 식단표를 보는 사람이 나뿐이다. 그렇다고 이 종이가 무용하지만은 않다. 등교 주간이면 식단표가 붙어있는 교실 앞쪽 게시판은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의 '핫플'이 된다. 그날의 식단을 읊조리며 아이들은 어서 밥 먹을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몇몇 명민한 아이들은 한마디씩 덧붙인다. “근데 이건 누가 표시해둔 거지?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건가?" “선생님은 다 이런 것만 좋아해?" '이런 것'들이란 주로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들이다. 
 
말하자면 나는 채식을 지향하는 잡식인이다. 어렸을 땐 입에도 대려고 하지 않던 가지나 버섯, 쓴맛이 나는 잎채소들이 언젠가부터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창 위장에 탈이 많이 나던 시기에는 고기를 줄이면서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니 속이 편해지는 걸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더 큰 이유, 바로 기후위기 때문에 채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지난 여름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강력한 태풍들이 말해주듯 기후위기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지구 온도 상승인데,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18%로 전 세계 교통수단을 더한 13.5% 보다 많다. 소의 배설물이나 트림, 방귀 등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큰 온실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축들을 살찌우기 위해 풀이 아닌 곡물 사료를 먹이면서 옥수수와 같은 한 가지 작물만을 재배하는 단작이 확대됐다. 그 결과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많은 물이 낭비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 온도 상승을 늦추기 위해서는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꼭 짚고 넘어가곤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먹는 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간혹 이제부터 고기를 먹지 말자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급식을 할 때면, 게다가 한우 불고기나 돼지 수육이라도 나온다면 말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일괄 배식을 받고, 식판에 놓인 고기를 거부하긴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고기 요리를 빼고 먹는다고 해도 밑반찬이나 국에도 고기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결국 '내가 먹지 않으면 남는 건 음식 쓰레기가 될 테니 먹자'는 마음으로 급식판을 육류로 채우게 되는 것이다. 고기를 집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은 급식시간이면 늘 겪는 딜레마다.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은 울산교육청에서 10월부터 채식 선택 급식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울산 내 모든 학교에서는 환경과 동물 복지를 고려하는 학생들 또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채식을 하는 학생들에게 채식 식단을 제공한다. 채식 선택권이 주어지면 기후위기에 민감한 청소년들이 채식을 선택하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울산 지역 학교에서는 '고기 없는 월요일'을 운영해 채식 문화를 경험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환경 운동에도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을 통해 조만간 울산의 모든 학교에서도 채식 급식이 활성화되면 좋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채식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지속적인 교육과, 영양이 잘 갖추어진 식단을 마련하는 일이 필수일 것이다. 
 
울산의 학생들이 채식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구 환경을 위하는 선택을 하는 계기가 조금 더 늘어나길 바란다. 
 
우리 교실의 식단표에 가득 찬 밑줄을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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