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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풍경은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서영교
쿠바의 풍경은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서영교

쿠바에서 겪게 되는 독특한 경험 중 하나가 이중화폐 제도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살길이 막막해진 쿠바가 눈을 돌린 곳이 관광산업이다. 그러나 벌어들인 외화 때문에 자국의 물가 체계가 붕괴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고,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외국인 화폐(쿡)와 자국민 화폐(쿱)를 달리 하는 것이었다. 1쿡은 1달러에 상응하고, 1쿡은 24쿱으로 교환된다. 밥을 먹어도 외국인을 위한 식당에선 약간 더 좋은 식사를 24배 비싸게 사 먹는 식이다. 지금은 그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크게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로 인한 문제는 심각하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 사이에 빈부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고, 일할 의욕을 잃고 외국인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거리에 나앉아 소일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페인트칠이 벗겨진 골목에 스며들어 거리의 풍경이 돼버렸다. 

쿠바의 풍경은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서영교
쿠바의 풍경은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서영교

# 화려했던 과거와 비루한 현재의 불협화음
현지인들이 다니는 길에는 창만 빼꼼 낸 길거리 식당에선 샌드위치 하나랑 과일주스 하나에 5쿱을 받는다. 200~300원? 보통 한 끼를 만원 내외로 먹던 것에 비하면 딴 세상이다. 물론 샌드위치라는 게 작은 빵 사이에 저렇게 얇게 펼 수 있을까 싶은 계란프라이가 수줍게 끼어 들어가 있을 뿐이지만. 빵은 구멍 난 풍선처럼 잡자마자 바람이 빠져나간다. 더 쪼그라들기 전에 얼른 입으로 집어넣는다.  

아바나를 골목골목 걷다 보면 끝도 없이 나오는 식민지 시절 스페인풍의 웅장한 건물들이 지금은 반쯤 허물어져 외벽만 남은 채 건물을 통해 다시 하늘이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화려했던 과거의 잔재들을 현재의 비루한 삶이 부여잡고 있는 그 불협화음이, 쿠바의 혁명, 낭만과 정열, 이런 이미지들과 적당히 버무려져 타지인의 눈에 신비화되고 있다. 이들이 좋아하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롱샷으로 보면 희극이고, 클로즈업으로 보면 비극이다'. 이국적 풍경에 흥분했던 어제까지의 내가 본 것은 희극이었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실체는 비극에 가깝다. 

쿠바의 아이들은 귀여우면서도 당당하다. ⓒ서영교
쿠바의 아이들은 귀여우면서도 당당하다. ⓒ서영교

이런 씁쓸한 마음에 여행의 흥이 떨어질 무렵 후안을 만났다. 나처럼 올드 아바나의 골목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던 그는 쿠바의 어느 잡지사의 사진가라고 한다. 그와 동행하며 스트리트 포토에 대한 여러 조언을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번개처럼 찍고, 눈을 마주치지 마라'는 것이다. 

실제로 후안은 쑥 들어가서 찰칵하고 돌아서는데 일초도 안 걸렸다. 눈을 마주치면 카메라를 의식하게 돼 자연스런 장면이 안 나온다. 찍은 후에도 마찬가지. 눈 마주치면 뒤통수가 먹을 욕을 앞통수가 먹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라면 경찰서에 가게 될 수도 있지만 쿠바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쿠바에서는 욕을 먹는 것도 인사를 하는 것처럼 일상이며 사소한 일에 감정을 남겨두지 않는다. 물론 나는 전문 포토그래퍼가 아니라 여행자이므로 찍고 돌아서기보단 교감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가 준 또 하나의 조언. 진짜 쿠바사람을 보고 싶으면 베다도로 가라. 올드 아바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단다. 열심히 사는 진짜 쿠바사람들을 보기 위해 신도시 격인 베다도로 숙소를 옮겼다. 
 

아바나의 오래된 이발소. 쿠바노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서영교
아바나의 오래된 이발소. 쿠바노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서영교

# 스스로 선택하고 이야기하는, 삶은 기억이다
최근에 딸과 함께 본방사수했던 드라마 중에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있었다. 딸은 김수현에게, 나는 서예지에게 꽂혀서라고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억'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이다.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폐를 앓는 형 상태 때문에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는 강태. 엄마는 항상 "네가 형을 잘 보살펴야 한다. 그럴려고 널 낳았어"라고 말한다. 비 오는 날 형만 우산 씌워주는 엄마, 자면서도 형을 끌어안고 자는 엄마. 이제 엄마는 죽고 그런 형을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 현실은 헤어나오기 힘든 진흙탕처럼 강태를 괴롭힌다. 하지만 사실은 그 뒤에 편집돼 가려져 있던 행복한 기억이 한구석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뒤돌아보며 나를 불러 우산을 씌워주는 엄마, 형을 안고 자다가 문득 뒤로 돌아 나를 안아주는 엄마)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는 현재의 나를 규정하기 위해 내가 취사선택한 과거다. 어쩌면 현재가 과거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가브리엘 G. 마르케스는 그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고 했다. 삶은 기억이다. 어쩌면 내게도 기억의 그늘에서 내가 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과거의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단 개인의 삶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삶이 기억이라면 한 나라 혹은 민족은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에 취사 선택된다. 그런 점에서 쿠바사람들은 행복하다.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가 있었고, 혁명을 기억하고 있으며, 여전히 체 게바라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 산티아고와 청새치 그리고 헤밍웨이의 바다
헤밍웨이가 말년에 쿠바 아바나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쿠바를 사랑했고 한 늙은 어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바로 "노인과 바다"다. 

많은 관광객들이 지금도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그가 이용했던 호텔이나 술집을 찾고, 자주 마셨던 술을 마신다. 심지어 어느 술집은 헤밍웨이의 단골집이라고 가게 앞에 헤밍웨이 초상화까지 커다랗게 그려놨다가 최근에야 거짓이라고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가게를 찾아 모히토를 마시며 정신없이 인증샷을 찍는다. 헤밍웨이와 무관한 곳에서 헤밍웨이를 추억하는 난센스.

아바나엔 빈 벽이 없을 정도로 그래피티가 넘쳐난다.
아바나엔 빈 벽이 없을 정도로 그래피티가 넘쳐난다. ⓒ서영교

나는 대신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무엇을 봤을까? 다시 본 소설에선 좀 더 헤밍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늙어버렸지만 그의 두 눈만은 바다색과 꼭 닮아 활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났다'

산티아고에 대한 묘사다. 노인 산티아고는 85일간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고 주변에선 한물간 노인네 취급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끝내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피 맛을 본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살은 다 뺏겨 버렸지만, 머리와 뼈만 남은 청새치는 햇빛에 아름답게 빛난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아프리카의 해변을 걷는 사자 꿈을 꾼다. 뼈만 남은 청새치는 지금의 쿠바처럼 가까스로 자신을 증명하고, 노인 산티아고는 내가 느낀 쿠바노 자체였으며, 헤밍웨이는 쿠바의 한 노인에게 자신을 투영해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서영교 <br>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 단체 및 그룹전 7회 class614@naver.com
서영교
class614@naver.com
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
단체 및 그룹전 7회

'노인과 바다'는 그대로 쿠바의 역사가 된다. 원문이 더 찰지게 와닿아서 그대로 인용해보자면,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혁명으로 이룬 쿠바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대사는 없을 것이다. 물론 헤밍웨이는 혁명에 반대해 미국으로 돌아 가버렸으니 그도 결국은 미국인의 시점을 버리지는 못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 명문장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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