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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어린이 마음처럼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 주어야 하는데, 잘해 보려는 저의 욕심 때문에 어린이는 없고 어른들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시인의 말>만 봐도 시인께서 얼마나 동시를 사랑하는지, 어린이들과의 소통을 꿈꾸는지가 보입니다.
초록 노랑 빨강 파프리카 신호등이 켜진 아래 시인은 올해도 즐거이 농사를 지으셨을 테지요. 시의 향기,'시향(詩香)'의 삶, 그 결실로 얻게 된 '파프리카 신호등'이라 더 의미가 클 것입니다. 시향 시인님 텃밭에는 신호등 외에도 우주선이 부릉거리고 있네요.
늦가을인 여태도 못 떠나고 있는 우주선 곁에 쪼그려 앉은 밀짚모자 농부가 보이시죠? "후우~" 입 바람 한 방이면 될 걸 걱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농부 아저씨 마음부터 읽기로 해요.

# 민들레 호
여기는 텃밭별
민들레호
씨앗은 잘 익어
떠날 준비 끝냈으니
바람은 빨리
불어와 주길 바란다.

오~ 바~

시향 시인님은 사진사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봄꽃 공장 사진사>, <가을꽃 공장 사진사> 두 동시도 사진사의 감성으로 빚어내셨지요. "가을꽃 공장 사진사/아빠에게는/떨어져 사라져 버릴 낙엽도/모두 꽃이다."라며 '꽃 공장 사진사'의 직분을 기쁘게 수행하시는 게 보입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줄 모르고 야채 식구, 꽃 식구, 곤충 식구를 돌보고 계신 시인. 터질 듯 말 듯 부푼 물집을 동무 삼은 동시 <물집>에 한참 마음이 머뭅니다.

# 물집

텃밭에서 종일
양파와 마늘을 캔 아빠
물이 집을
두 채나 지었다며
손바닥을 펴 보여 주신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저절로 생겼다는 물집
물의 집도 아닌
우리 집도
생겼으면 좋겠다.

물집으로 부족해 이번에는 텃밭 <노래 교실>을 여셨네요.
"노래 못하는 우리 아빠/텃밭에/노래 교실 만들었다.//벌과 나비/동그란 대파 마이크/붙잡고 노래 연습 중.//덩달아 신이 난 아빠/노래 교실 학원비는/까만 씨앗으로 받는다."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시향 시인님의 동시를 읽는 어린이들은 참 행복할 거예요. 코로나19가 싹 도망갔다며 '이시향 시인님께'라고 편지를 쓰는 친구가 한둘이 아닐 테지요.
지금쯤 텃밭 파프리카 신호등도 동면에 들었겠지요. 봄볕을 등에 진 시향 아저씨, 파프리카 신호등을 내걸 준비로 바쁜 모습이 보이고요. 지렁이 농사꾼들 굼틀굼틀 밭고랑을 오르고 계시네요. "초록불이야!" 나비 아이들, 벌 아이들 등굣길도 환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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