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선에 머물다] 미운 것들이 보고 싶을 때가 되었다
[詩선에 머물다] 미운 것들이 보고 싶을 때가 되었다
  • 도순태
  • 2020.11.24 16:52
  •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운 것들이 보고 싶을 때가 되었다
                                                                          
강세화

마지막 달력을 쳐다보고 하루가 쓸쓸한 날
무슨 수로 마음 깊은 그리움을 털어놓을까.
한가히 홍시를 먹으며
세상에 미운 것들이 보일 듯 말 듯 보고 싶다.
이제부터 한참 동안 심심하든지
적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든지
부지런 떨든지 게으름 피우든지
뻔뻔하게 찾아오는 날짜를 돌려세울 수는 없다.
날씨를 보아서 이기심을 저장해야 한다.
이쯤에서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다
믿을 만한 생각이 나지 않아도 그만이다.
일쑤 토라져서 흘겨보는 겨울이
질기게 머물러도 한 철이라 다행이다.
거슬리는 말씨를 거두고
비릿한 사람들끼리 선선히 다가앉을 때가 되었다.

△강세화: 1951년 울산 출생. 1983년 제39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1986년 '현대문학' 추천완료, 1995년 '수상한 낌새' 출간. 1996년 제4회 오영수문학상(창작기금) 수상. 2003년 제3회 울산문학상 수상.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미운 것들이 보고 싶을 때가 되었다'의 시 제목에서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가는 색을 본다. 초록에서 푸름을 지나 붉은 시간이 사라지고 처음으로 돌아가듯 나무 본래의 색 같은 시인의 마음을 보는 듯해 한걸음 물러서서 시를 읽게 된다. 시의 전반에 뿌려놓은 쓸쓸함으로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지만 날선 시간들을 돌아보는 여유에서 무딘 그리움으로 오랜 적조의 날들을 위안하는 시인의 작정이 좋다. 지나 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낡은 감정을 접어두며 산 세월이지만 그래도 보고 싶음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마지막 달력을 앞두고.

마지막은 물감을 푼 것 같은 모든 기억들이 희미하게 풀어지나보다. 끝일 것 같은 막연한 감정 안으로 들어서는 '보일 듯 말 듯 보고 싶다'는 시인의 독백이 본인도 모르게 화해의 다리를 건너고 있음이 아닐까? 그래서 시인은 한동안 '심심하든지' '떠나든지' '게으름을 피우든지'의 방법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겠지. 어쩜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뜨끈한 어묵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겨울밤이 될지도. 그렇게 사는  멋진 지혜를 시인은 안부처럼 여기저기 전화로 그대들 부르지나 않을까. 그렇게 '주위를 살펴보는' 마지막의 의미를 다시 생각게 하는 것이다.

'비릿한 사람들끼리 선선히 다가앉을 때가 되었다' 하여 더욱 이 시의 힘을 얹어 주고 있다. 쓸쓸함과 그리움만 있는 마지막이라면 더 외로운 시간이 되었을 거다. 어쭙잖은 일로 소원해져서 어색한 사이에서 가끔은 쭈빗쭈빗 걸어 나오는 그리움을 시인은 먼저 다가가기 위해 마지막이라는 순간을 끌고 온다. 그래서 '거슬리는 말씨도 거두고' 오랫동안 저장해 두었던 마음을 꺼내지 않았을까. 마지막이란 아련하고 그리움만 남기기도 하지만 새롭게 시작도 가능함을 알고 있었나보다. 격정의 말들이 낡아 부드러운 간격으로 이어주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때, 12월을 며칠 앞두고 어딘가 전화해 따뜻한 식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이 조바심.
 도순태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울산신문은 여러분의 댓글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는 댓글. 도배성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위배되는 댓글은 삭제 될수도 있습니다.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