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쓸쓸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쓸쓸한 느낌을 주는 말들이 있다. 11월, 낙엽, 저물녘, 가을비, 빈집 혹은 빈 들판, 그리고 절터, 이런 말들. 지난 일요일 저물녘에 운흥사지를 다녀왔으니 '가을비'를 빼고는 쓸쓸함의 요소를 다 갖춘 셈이다. 
 
운흥사지는 웅촌면 정족산에 있다. 그전에 두서면 구량리의 은행나무를 보러 가서 찬란한 황금빛 잎들에 눈이 황홀해져 있던 터라, 폐사지 들어가는 길가의 반쯤 잎이 떨어진 갈색 나무들을 보니 사색에 잠긴 듯 고요하고 우울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물결이 일 듯 잔바람이 불면서 남은 잎들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가을의 낙엽비, 아니 낙엽의 가을비이다. 마침 길옆이 깎아지른 듯 가팔라지더니 그 아래 넓은 계곡이 펼쳐졌다. 계곡이 깊은 만큼 물소리가 깊다. 큼직한 너럭바위도 군데군데 있어 여름이라면 사람들로 붐빌 듯한데 가을바람이 서늘한 지금은 남편과 나, 둘뿐이다. 계곡 근처의 제법 규모가 큰 식당도 코로나의 여파인지 인기척이 없다. 
 
식당을 지나니 바위가 물을 가두어 흐름이 느려져 깊은 소(沼)처럼 물이 고인 곳이 나왔다. 물 위를 낙엽이 반이나 둥글게 덮고 있어서 마치 계곡의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친 것 같다. 아니면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이라는, 제석천이 넓게 펼친 무수한 연기(緣起)의 그물을 절터의 입구에서부터 보여주는 것일까. 그러니까 저 낙엽 하나하나는 그물을 이루는 장엄한 구슬이라는.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계곡이 좁아지다 마침내 수로 같은 곳에 이르자 돌 위의 물이끼가 스님들의 가사처럼 황갈색이다. 그러니까 잿빛 화강암은 장삼이고 황갈색 물이끼는 장삼 위에 두른 가사와 같이 의연히 법복의 빛깔을 띠고 있다.
 
수로를 건너 비탈을 오르자 운흥사(雲興寺) 터가 나타났다. 절터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을 보니 운흥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해서 18세기 영조 연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중건과 재건을 거쳐 대략 1,200년 가까이 건재하다 폐사된 지 250 여년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 기둥과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문과 담이 허물어져 몇 기의 부도와 수조, 건물터만 남았다. 시들어 가는 풀 속에 박힌 돌들을 따라 걸으며 건물의 크기를 짐작해 보았다. 생각보다 금당의 크기가 작아서 놀랐다. 하긴 옛집을 허물 때 보니 모자람 없이 쓰던 안방의 크기가 장판과 구들을 들어냈을 때 얼마나 작아보이던지. 조선시대 운흥사는 불교 경판을 제작하는 곳으로 유명해서 한때는 천 명 가까운 스님이 기거했다고 전하며, 아침저녁으로 쌀 씻는 물이 멀리서 보면 얼음판 같았다고 한다. 만약 다시 전각과 산문, 요사채를 복원한다면 그 규모가 상당할 것이다.
 
좁은 골짜기로 조각보처럼 남았던 해가 떨어지자 이내 어스름이 내렸다. 어스름과 함께 무연한 쓸쓸함도 밀려왔다. 판재를 다듬고 글자를 새기던 그 많던 스님들은 어디로 갔을까. 판목을 보관하던 전각들은 어떻게 무너져 내렸을까. 시월 초인가, 김해의 대성동고분군에 올랐었다. 널무덤과 돌방무덤. 주검을 품었던 실체가 환히 드러나 있는데도 을씨년스럽거나 쓸쓸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주변을 공원처럼 꾸미고 시내를 굽어보는 언덕바지라 시야가 확 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하늘이 거울처럼 맑은 초가을 한낮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운흥사지는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고, 나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석양 무렵에 들러서인지 황량하고 스산하다. 날도 싸늘해서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풀이 가지런히 다듬어진 것을 보니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뒹구는 돌과 기왓장, 텅 빈 수조에서 배어나오는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쓸쓸함이 그저 처량하고 허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저물녘 운흥사지가 주는 쓸쓸함에는 잿빛으로 바랜 오래된 목판처럼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어떤 정갈함,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주변을 감싸듯 흐르는 가을 물 소리 같은 서늘한 명징함.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느티나무가 주는 견결함. 가을 운흥사지는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드물고 굳고 정하다는 갈매나무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운흥'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남이니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중흥의 의미이겠다. 하지만 생(生)과 회(會)가 있으면 멸(滅)과 산(散)도 있는 법. 서산대사도 삶과 죽음을 구름이 일어나고 스러짐에 빗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드라망의 구슬은 서로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으니 나고 죽고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중중무진으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 마음이 문득 허전해 지는 가을의 어느 날에는 저물녘 운흥사지에 가보라. 허전함이 저녁 이내처럼 풀어지고 마음은 가을 물처럼 가라앉아 쓸쓸함을 넘어서는 어떤 정신의 운흥, 정기의 운흥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감지될지니.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