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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에린 핸슨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와 몸무게나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의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이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에린 핸슨(1995~ ): 호주 브리즈번 출신.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열아홉 살 때 인터넷 시를 발표하면서 알려짐. '언더그라운드 시집 thepoeticunderground' 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 평범한 단어들로 시적 운율을 살리는 시를 써서 독자에게 다가간다. 또 다른 시 '모든 가슴에 태풍이 있다.(Every heart's a hurricane)' 등.

이미희 시인
이미희 시인

나는 누구일까? 간혹 내가 누구인지 나조차 궁금할 때가 있다. 내 나이와 몸에 걸친 것들과 화장으로 치장한 것들도 다 나 외의 것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온전한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이를 지우고 머리 색깔을 씻어내고 겉치레로 덮인 옷을 벗겨냈다. 어쩌면 나 아닌 것들로 그려진 문양들이 내 속의 나를 가둬버린 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나를 불러내 본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우리의 자아에서 생성된 언어들과 눈에서 익힌 낱말들은 고스란히 자기 것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몇 줄 행간에 멈춰버린 마음은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가진 목소리와 미소는 영원한 내 것이고 나는 내 웃음 속의 사랑스러움이고 내가 흘린 모든 눈물이었다. 나는 얼마만큼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었고 얼마만큼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까.

내가 다닌 모든 곳, 내가 믿는 모든 사람과 사물 그리고 내가 꿈꾸는 미래 그 모든 것이 바로 나였다. 제대로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그로 인해 지금껏 나였던 모든 것을 보내버리고 싶지는 않다. 괜찮은 나를 만들기 위해 판단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생각을 대변하듯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더 소중한 걸 제시한다. 누군가에게 나 또한 상대의 모습이 될 수 있기에.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이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이미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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