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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약사동에 위치한 제방유적전시관이 제2종 박물관으로 등록됐다. 제2종 박물관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6조와 같은 법 시행령 등에 근거해 박물관 자료 60점 이상,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 1명, 82㎡ 이상 전시실, 수장고, 도난 방지 시설 및 온습도 조절 장치 등의 요건을 갖춰야 등록이 가능하다. 울산박물관은 울산시에 등록을 신청해 심의를 거쳐 등록증을 받았다. 이로써 울산은 10개의 등록박물관을 보유한 도시가 됐으며, 이 중 8개는 공립박물관이다.

이번에 2종 박물관으로 등록된 약사동제방유적전시관은 울산의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물적 자산이다. 이 곳은 울산혁신도시 조성을 위한 발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신라 시대 제방으로 하마터면 그냥 땅 속에 묻힐 뻔 한곳이었다. 다행히 중요성을 깨달은 문화재당국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를 보존하기로 해 현재의 모습이 남았다. 전시관은 2017년 5월 24일 개관해 현재 울산박물관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제방 전시실과 테마 전시실, 약사동 마을 전시실, 영상실, 체험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곳은 고대 제방의 축조 공법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전시관이다. 제방은 지난 2014년 9월 국가 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528호로 지정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 전시관의 전시·연구·교육·체험 역량을 강화해 울산의 알찬 전문 박물관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옥현유적관의 보존과 콘텐츠 보완 등도 중요하지만 울산에서 사라져 버린 수많은 고대의 흔적들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에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옥현유적이다. 울산시 남구 무거동 일대에서 발굴된 옥현유적은 동북아 벼농사의 실상을 알려주는 고대사의 중요한 단초였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이 곳의 경우도 주택개발로 모습을 드러내 전시관을 짓고 유적지를 보존했다. 바로 옥현유적전시관이다. 이 곳은 지난 2002년 5월 문을 열고 운영에 들어갔으나 울산박물관 개관 이후 관람객 감소로 지난 2012년 문화재청 평가에서 보존조치 유적 해제에 따라 문을 닫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전시관에는 청동기시대 논터와 유구, 토기 파편 등 옥현지구 발굴 유물(적) 3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사라진 옥현 유적은 한반도 최초의 청동기시대의 논터가 대량으로 발굴된 곳이다. BC 7세기경에 시작된 한반도 논농사의 첫 흔적이 바로 울산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고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울산을 찾은 이들이 울산에서 동북아 벼농사의 시작의 증좌가 발견됐다고 이야기하면 모두다 어리둥절해 한다. 공업도시 울산에 한반도 최초의 논농사 유적이라니, 이런 식의 반응이다. 옥현 유적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적은 무려 72 동의 움집터와 논, 그리고 수전유적, 환구(環溝. 마을 주위를 둘러판 도랑) 등이다. 놀랍게도 이들 유적은 거의 원형 그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청동기 시대의 농경생활과 문화 및 수전농사의 모습을 확인하는 결정적 지표가 됐다.

옥현 유적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발견된 논이 청동기시대 전기인 기원전 7세기의 것으로 동아시아 최고의 수전유적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유적은 한반도에서 적어도 기원전 7세기 이전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증좌가 됐다. 중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수전유적이 확인되지 않았고 일본의 경우에는 큐슈의 나바다케·이타즈케 유적, 오사카의 이케시마 유적 등이 있어 마치 일본이 논농사에서 선진문화를 가진 것처럼 알려졌지만 울산 옥현유적으로 모든 것이 정리됐다. 일본의 논농사 유적은 가장 이른 시기의 것들도 기원전 5세기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옥현 유적의 발견으로 수전경작이 한반도에서 유래되었고 일본의 그것도 한반도 남부에서 기원했음이 입증됐다.

그런 증좌가 울산이라는 땅의 역사에 풍요로움을 더해주지만 정작 울산사람과 대한민국 국들은 울산을 역사의 줄기에서 민망할 정도로 천시한다. 지난 2012년 문화재청은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증좌인 옥현유적관을 폐쇄했다. 찾는 이가 없어 운영이 어렵고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사실은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옥현유적관은 박물관이 아니다. 유적관은 유적의 의미를 부여하는 유적이 나온 지역의 장소성에 주목하는 기념비적인 구조물이다. 우리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들이 중요 유적지에 표석을 세워 발굴 장소의 의미를 알리는 것과 같은 상징이다. 실제로 옥현유적관 안에는 청동기 유물이 거의 없었다. 옥현유적관 발굴을 주도한 경남대 박물관에 옥현유적 출토품이 전시돼 있다. 이 유물은 당연히 울산이 돌려받아야 한다. 누가 나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경남대와 유물 반환 협의를 한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이곳을 제대로 정비하고 울산에 한반도 최초의 논농사 유적이 있음을 알리는 작업을 했는지 울산의 문화계와 리더들은 반성해야 한다. 약사동 제방유적도 그지경이 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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