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속 빨강머리 소녀는 어떤 주문을 외울까요? 반짝 치뜬 눈과 다부지게 모은 손으로 봐선 예사 주문이 아닌가 봐요. 동시집 어디 만큼에 주문이 숨어 있을까요? 김춘남 시인님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맛보이는 첫 주문. 빼빼로가, 초콜릿이, 치킨이, 피자가, 햄버거가, 용돈이 펑펑 쏟아질 것 같은 주문, 어서 맛보기로 해요.
# 빼빼로 데이에 주문을 외우는 삐삐
길쭉하고
날씬한
빼빼로 과자
아이들이
야금야금
먹을 때마다
어디선가
숨어서
주문을 외우는
말괄량이 삐삐
- 빼로빼로 빼빼로 배로배로 슉슉 얍!
어, 삐삐 얼굴에 그 많던 파리똥(주근깨)이 어디로 내 뺀 거죠? "빼로빼로 빼빼로 배로배로 슉슉 얍!" 주문 덕을 가장 많이 본 게 삐삐 같네요. 어른인 저도 이 해가 가기 전에 요 주문을 부지런히 써먹어야겠어요. 코로나가 어서 싹 지나가라고 외워야겠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동시를 쓰게 해 달라, 동물들이 더는 다치지 않게 해 달라, 마귀가 착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게 해 달라 등등 크고 작은 소원들이 산더미거든요.
이쯤에서 남촌(南村) 김춘남 시인님을 소개할게요. 시인께서는 부산에 사시며 세 권의 동시집을 내셨어요. 첫 번째 동시집 '<앗, 앗, 앗>(푸른사상, 2013)'은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려서 더 특별해진 동시집이지요. 늘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동시를 쓰려 애쓰시는 분이지요. 2019년 울산 동요사랑 대회에서는 '대상'을 타셨지요. 부산아동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대구매일신문 동시, 부산일보 시 당선이라는 영예를 안으셨어요. 말괄량이 삐삐가 제일 먼저 접수할 집, 코끼리 집 속으로 쑥 몸을 들입니다.
# 겨울 코끼리 집
시골 할머니 집은
겨울 코끼리 집.
처마에 매달린
상아 같은 고드름.
엄마 코끼리와
아기 코끼리가
끼리끼리 오순도순
겨울을 보낸다.
코끼리 집에서 겨울방학을 보내는 어린이 친구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고드름에서 코끼리를 만났으니 시인은 또 얼마나 기쁘셨을지. "끼리끼리 오순도순 겨울을 보내는" 코끼리 집. 그 집 할머님 모습도 보입니다. 코끼리 코뿔 주렁주렁 매달린 집 할머님답게 씩씩하신 할머니는 올해도 가마솥 한가득 팥죽을 쒀 나누고 계시네요. 푸푸 코뿔 싸움 한 차례 마친 손주들이 "할머니이!" 하고 들어서면 고구마 물리고, 곶감 물리고, 팥죽 떠먹이고, 뿔룩해진 배 낄낄 흔들며 "끼랴 얍!" 다시 시작된 코뿔 싸움. 굴뚝은 신이 나 퐁퐁 연기 피워 올리고, 한밤이 되기를 기다려 처마는 뾰족뾰족 상아 키우느라 바쁘기만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