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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학대피해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시스템은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무엇보다 전담공무원제의 실질적인 시스템 구축과 학대피해아동에 대한 격리시설인 쉼터 부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도입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제도를 살펴보면 허점투성이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권한이나 전문성 결여가 우려되는 문제다. 지난해 10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시행으로 지자체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을 배치하고 있다. 이들은 아동학대 행위자를 상대로 출석 및 진술, 자료 제출 요구 등의 권한을 갖는다. 이전까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해오던 업무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과 함께 현장조사 후 보호·격리 여부 결정 등 사후관리를 책임졌다. 그러나 학대 행위자가 현장 조사 등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대안이 없다. 실질적인 사법권 부여나 권한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쉼터부족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울산의 경우 아동에 대해 학대 피해 신고가 1년 이내 2번 이상 들어오면 학대 행위자로부터 피해 아동을 분리해야 한다. 분리조치 된 아동들은 학대를 당한 만 0세~18세 아동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인 학대피해아동 쉼터에서 머무를 수 있으며 3개월에서 연장 시 최대 1년까지 가능하다. 상주하는 심리치료사로부터 전문적인 관리 등을 받을 수도 있다. 쉼터 한 곳에 입소할 수 있는 최대인원은 7명이다. 그러나 학대피해아동 쉼터는 전국적으로 72곳뿐이라 매우 부족하다. 

울산지역도 쉼터부족 현상은 심각하다. 울산에는 쉼터가 중구와 울주군에 2곳밖에 없어 365일 내내 포화상태다. 해마다 아동학대 신고 가운데 사법처리를 받은 건수는 △2018년 189건 △2019년 230건 △2020년 254건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쉼터 수용 인원은 2곳을 합쳐봐야 고작 14명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제때 쉼터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타 지자체로 가야 하는 상황이 다반사다. 

아동이 타지역으로 가는 경우 타지에 있는 시설과 아동 간 치료 연계를 해야 해 시간이 소요되니 그만큼 돌봄에 공백이 생긴다는 문제점도 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동들에게도 부담이 크다. 또 먼저 쉼터에 입소한 아동들은 새로 밀려드는 피해 아동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해 양육원이나 공동생활가정 등 타 시설로 이동하는 일도 잦다. 

울산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쉼터 외 시설은 피해아동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서 관리에 차이가 있다. 쉼터에는 심리치료사가 상주하면서 입소 인원인 최대 7명을 케어한다. 그러나 타 기관은 외부 치료사와 연계해 일주일에 1회 심리치료를 받으며, 인원도 많다 보니 세심하게 보살펴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면서 "1년에 10여 명 정도 되는 아동들이 울산지역에 자리가 없어 타지로 옮겨지고 있다. 학대피해 아동 특성에 맞게 케어해줄 수 있는 소규모 시설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대피해 아동을 가정에서 급히 분리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 시 쉼터가 부족해 난감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72시간 동안 아동을 분리한 뒤 학대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하는데,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쉼터가 아닌 타 기관은 입소가 까다롭다. 공동생활가정은 아동의 전입신고 등 거쳐야 할 행정절차가 필요하다. 울산시는 올해 동구, 북구에도 쉼터를 각각 1곳씩 추가하고 전문가정위탁제도를 도입하는 등 학대피해 아동들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해결될 때까지는 어느정도 기다려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아동학대의 경우 신고 이후의 후속대책이다. 실제로 아동학대는 신고를 해도 해당 아동 10명 중 9명 정도는 다시 학대 부모 곁으로 돌아간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찰이나 당국에서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시설 등으로 옮기지 않고 가해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경우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정인이 사건의 경우에도 학대 조사가 3차례 진행됐지만 양부모로부터 분리되지 못했다.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아동학대로 분류된 사례는 총 2만 3,891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학대 가해자와 피해 아동 간 분리가 이뤄진 사례는 약 14%인 3,482건에 불과했다. 

신고 초기 아동을 분리할지는 경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현장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친권자인 부모의 거짓진술이나 정황 등을 제대로 걸러내는 과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학대 의심 아동의 경우 신고와 조사, 다시 친권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제대로 살펴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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