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선에 머물다] 흔들의자
[詩선에 머물다] 흔들의자
  • 박정옥
  • 2021.01.19 20:42
  •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흔들의자

김수우

돌아가자마자 흔들의자부터 사야지

언제든 앉으면 저절로 몸이 흔들리는 의자
달개비 같이 서러워도 한순간 심연처럼 깊어지는 의자
거미줄처럼 복잡해도 단박에 고요해지는 거야

쿠바는 흔들의자였다
집집마다 계단 같은 흔들의자가 있다
열 개씩 가진 자, 그 뒷길
칠 벗겨진 가난한 문가에도 두개씩은 놓였다
튼튼한 것도 있고 삐걱이는 것도 있지만
모든 틈들이 거기 앉아 흔들거렸다
부러웠다
의자에서 춤과 노래 흔들흔들 자랐구나
의자 가득 하느님들이 술렁이는구나
하느님은 춤을 추는 자, 흔들의자는 야릇한 신을 기르는 구나

한 번도 제대로 흔들리지 못했다
바다를 입은 파도처럼 산그늘 입은 후박나무처럼
흔들, 흔들거리자
죽음도 삶도 모두 춤이어야 하니

죽은 자도 산 자도 출렁이는 바람이어야 하니

십년을 돌고 돌면서
아직도 사지 못했다

낡은 제단에서 태어난
하느님들 아직도 나를 기다라고 있을까

△김수우 시인: 1995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길의 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몰락경전' '젯밥과 화분', 산문집 '쿠바, 춤추는 악어', 시에세이집 '스미다'.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흔들의자가, 이렇게 넓고 광범위한 배경을 가지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앉으면 리듬을 타고 즐거운 충만이 몰려오고 복잡하게 헝클린 마음의 실마리가 술술 풀려 매듭지니 무료한 응시가 얼마나 소망스러울까. 서러운 마음 흔들어 가라앉힌 덩어리. 깊은 사람으로 흔들리는 영광을 함께 누리고 싶다.
북미와 남미 사이에 있는 섬나라 쿠바는 아프리카를 마주보고 있다. 아프리카 기니만은 유럽인에 의해 강제로 대서양을 건넌 원주민들이 노예가 되는 보급처였다. 미국 남부의 목화밭으로, 쿠바로, 브라질로, 엘도라도를 찾아 신대륙을 수탈 하려는 유럽인들의 수단이 된 곳. 기약 없는 삶과 절망스런 현실에서 신을 향해 털어놓는 마음이 음악이 되었다던가.

재즈와 삼바, 블루스, 탱고, 맘보, 룸바, 차차차, 살사 등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춤과 음악으로 한을 달래고 굴려서 견뎌 온 것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쿠바에 대한 이미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대체로 음악과 춤과 혁명과 몰락한 사회주의와 무질서, 카리브해의 물빛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총체성을 흔들의자로 본 것일까. 집집마다 흔들의자가 있고 열 개씩 가진 집도 있고 가난한 집에도 두 개정도는 있단다. 그런 쿠바가 흔들의자란다. 쿠바를 다녀온 시인은 흔들의자부터 살 거라고 한다. 제대로 흔들려 보려는 것인가.
흔들의자는 사물이 아니라 시인이 읽어내는 삶의 지표다. 인내한 삶은 두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시인이 보고 있는 것은 미래다. 아직도 사지 못한 흔들의자를 기어이 마음속에서 꺼내는 날 벌어진 틈으로 낡고 춤 같고 음악 같은, 삐걱대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박정옥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울산신문은 여러분의 댓글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는 댓글. 도배성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위배되는 댓글은 삭제 될수도 있습니다.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