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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교육학 박사
이현지 교육학 박사

계절마다 먹는 아이스크림은 성인이 돼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끔 한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면 더운 여름날 태평양 망망대해의 보트 위에서 먹는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이 겨울,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 후 나의 손을 이끌고 빵집을 가자고 조른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제법 자주 다녔다. 빵집에는 아이가 잘 잡을 수 있는 적당한 높이에 막대 사탕과 초콜릿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아이는 빵보다 냉장고 앞의 딸기 아이스크림콘을 가리키며 손으로 톡톡 친다. 빨리 꺼내 주지 않으면 고사리 같은 작은 손가락으로 유리를 뚫을 테니 얼른 꺼내달라는 신호다.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옆 진열장에 놓여진 초콜릿과 색색의 사탕이 달린 바람개비 사탕을 집는다. 그제야 비로소 만족스러운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그리던 목적을 달성한 듯 기뻐하며 항상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준 사탕에 고마움이라도 표현하는 듯 방방 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장 먹겠다고 떼를 쓰지 않고, 집에 가서 먹겠다고 한다. 사탕을 먹고 싶은 다급한 마음에 아이가 즐기던 놀이터를 건너뛸 수 있어 좋다. 

나에게도 아이스크림에 관한 추억이 있다. TV에서는 "아이스크림 주세요. 사랑이 담겨있는."이라는 노래 가사로 인기를 누리던 가수도 생각난다. 그 유행가가 흘러나오던 시절의 어느 날, 외삼촌이 오셨다.

당시에 부유함을 상징하는 포니 자동차를 타고 와서 친가에 다녀오는 길에 어머니인 큰 누님 집을 방문해서 인사를 하고 가는 참이었다. 때는 마침 겨울방학이라 외삼촌 차로 외할머니댁에 데려준다는 말에 얼른 나섰다.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은 이모 댁이었다. 외할머니께 전해줄 간식거리를 준비해놨으니 들고 가라는 것이었다. 

이모는 학교 앞에서 과자와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 각종 간식거리와 학교 준비물을 판매하는 문방구를 운영했다. 이모는 나를 보더니 반가워할 겨를도 없이 아이스바를 줬다. 한겨울에 아이스바를 주니 이내 군침이 돌았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너무나 추웠던 그 겨울, 한파가 몰아닥치던 1월 즈음이었다. 이모는 이미 비닐을 뜯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바를 한 입 베어먹었는데 순간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모는 어린 조카가 만족스러워할 모습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지금도 그 춥다 못해 머리가 '띵'함을 잊을 수 없다. 

또 다른 추억이 있다. 우리 집에는 14명의 대학생 자취생이 있었다. 학생들이 많다 보니 자주 모여 기타를 치며 놀기도 하고, 가끔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집밥이며, 옥수수, 감자, 팥죽 등을 즐겨 먹었다.

주말이 되면 마당에서 족구 시합을 벌어졌다. 족구에서 진 팀이 아이크림과 과자를 사는 내기를 하곤 했다. 그 경기를 관람하는 나는 그 어느 편도 응원할 필요가 없었고,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경기였다. 대충 관람하거나 실컷 다른 일을 하다 경기가 끝날 무렵에만 와도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늘 예쁘게 앉아 있기만 하고 응원이나 호응을 하지 않아도 당시 금액으로 300원 하는 월드콘을 사주는 의리를 보였다. 콘 하나로 아이스바 3개를 살 수 있음에도 나에게만은 비싸고 큰 콘을 사줬다. 콘의 종이를 뜯어가며 살살 돌려먹는 그 맛은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웠고 오랫동안 맛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아이스바는 빨리 녹지만 콘은 비교적 천천히 녹으며 부드러운 목 넘김이 좋았다. 

아이는 집에 와서 빵집에서 사 온 콘을 한 입 베어먹어도 좋으련만 아껴서 먹겠다고 아주 조금씩 빨아먹어 줄줄 흘러내리는 양이 더 많다. 엄마로서 아까운 마음에 한 입 베어 먹고 싶지만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먹을 것을 두고는 엄마도 없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아이는 콘 아래 초콜릿을 먹는 것으로 간식 타임을 마무리한다. 마지막을 초콜릿으로 장식하는 아이를 보니 아이스크림보다 초콜릿을 먹기 위한 과정인가 보다.

다 먹고 나서 냉장고 앞에 선다. 냉동실 쪽을 가리키면 "더~ 더~." 라고 말한다.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줘야겠다.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뛸 아이를 생각하니 벌써 기대감에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생각해 보니 아이스크림은 달콤한 내리사랑인 것 같다.

아이스크림으로 이모는 나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끔 해주고 자취생들은 의리를 선물했으며 그러한 사랑을 받은 나는 아이에게 달콤함 겨울을 선물하고자 한다. 아이스크림에 담긴 내리사랑은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받는 설렘이 가득 담긴 선물처럼 달콤함이 녹아있다. 어린 시절의 시원하고 달달한 추억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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