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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찾아오는 겨울 진객들이 생태문화 자산을 넘어 울산의 문화유전자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우선 독수리 무리들에 대한 최근의 보고는 눈길을 끈다. 녹색에너지포럼의 황인석 박사팀은 울산에서 자주 목격되는 독수리 무리들이 몽골에서 3,400㎞를 날아 온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녹색에너지포럼 시민과학 생태탐사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3개월여 동안 울산에서 월동 중인 독수리의 생태를 연구한 결과 KM, NJ, JW 윙테그(wing-tag)마크를 부착한 독수리들로 확인 됐다. 이 마크는 몽골 이크나크 자연보호구 맹금류 연구센터에서 부착한 증표다.

이크나크 자연보호구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남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울산과의 거리는 3,400㎞다. 윙테그 마크는 몽골교원대학교 온러(Onol)교수 연구팀이 부착한 것으로 8월 2일, 3일, 5일 각각 부착했다. 울산지역에는 독수리 340마리가 월동중이다. 독수리들은 울산 뿐만 아니라 김해, 밀양, 창녕까지 50㎞ 내외를 이동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리 독수리류가 2,500 개체 정도 월동 중으로 확인되고 있다. 최근 철원, 파주, 연천 지역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야생동물 먹이주기가 중단되면서 더 많은 독수리 무리들이 남쪽으로 내려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부지역에서 확인된 독수리 개체수는 울산 340개를 비롯 경남 고생 750개체, 김해 150개체다. 독수리의 이동루트를 연구한 황인석 박사는 "멸종위기종인 독수리가 해마다 탈진해 구조되는 개체가 늘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사냥 능력이 없는 독수리에게 적정량의 먹이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개체수를 확보해 이를 탐조관광의 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생물다양성 차원에서 지역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수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준위협종(NT)으로 지정돼있으며 전세계 약 2만 개체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243-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무엇보다 독수리의 울산행이 반가운 것은 때까마귀와 함께 북방 이동루트의 증좌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떼까마귀는 해마다 겨울이면 울산을 찾아오는 진객이다. 두루미와 독수리도 울산을 찾는 겨울진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몇 해 전까지 이 겨울진객 가운데 떼까마귀만 울산을 찾았다. 그러다 최근 독수리의 겨울 이동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지난해부터는 집단적인 이동이 확신되고 있다.

시베리아와 몽골 일대에서 한 살이를 하다 혹독한 겨울이 오면 광활한 날개짓으로 남으로 향했던 두루미와 독수리, 그리고 떼까마귀는 이들과 함께 공존했던 북방의 인류에게도 이동의 신호음이 됐다고 본다. 겨울진객들의 날개짓을 따라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잡은 인류의 한무리가 동해를 따라 정착한 곳이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 강원도 강릉, 한반도 남쪽 울산이었다는 가설이다. 

울산을 찾는 겨울철새인 까마귀는 떼까마귀, 갈까마귀 두 종류다. 이들은 몽고북부, 시베리아 동부 등에서 살다 매년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남쪽으로 이동한다. 일부는 경기도에 머물지만 대부분의 떼까마귀는 울산 태화강부터 경주 형산강까지 겨울 한철 살림을 차린다. 

겨울 진객 떼까마귀가 울산의 겨울 생태 랜드마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검정의 상징성 때문에 흉조로 여긴 잘못된 인식에다 배설물 공포로 시민들의 선입견을 바꾸는 데 어려움이 컸다. 까마귀를 흉조로 인식한 것은 조선조 선비문화의 영향과 일본의 오래된 까마귀 숭상문화의 영향이 있다고 해석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태양을 숭배했던 우리민족이 태양과 인간을 연결하는 새로 '삼족오'(三足烏; 세 발 달린 까마귀)를 지목했다. 까마귀는 태양의 정기가 뭉쳐서 생긴 신비한 새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지하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했다. 오래전 우리민족은 까마귀를 삼족오로 칭했다. 삼족오는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오(金烏), 흑오(黑烏), 적오(赤烏)라고도 부르며 신성시했다. 

울산을 찾는 이 겨울 진객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하늘의 문자처럼 찍어서 보내준다. 그 유전인자는 북방문화의 한 축으로 우리 문화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문화유전인자의 한 축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다. 그 중에서도 중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문명교류의 관문이었다. 이 지역에서 살아온 북방 민족들은 한민족과 생활·문화·언어적으로 많은 공통분모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선사시대 한민족의 출발점을 중앙아시아 일대로 추정하는 증표들은 여기서부터 울산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다. 인류의 흔적은 이미 문명의 교류 이전부터 두루미와 떼까마귀 등 신성스런 영물들의 이동루트로 증명되고 있다. 그 이동의 흔적이 쌓여 문명의 이동이 이어졌고 그 흔적이 무덤이나 유물은 물론 풍습과 언어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런 역사가 겨울철새들로부터 증명된다니 반가운일이다. 녹색에너지포럼의 연구와 황 박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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